무위자연/世上山行

추월산 보리암 번개

가루라 2023. 1. 24. 02:21

작년 가을 찾았던 추월산 보리암

지금쯤 눈 덮인 추월산은

또 다른 자태를 보일 텐데

고향에 갔던 길에

민물매운탕이나 먹자고 찾았다가

먼발치에서 보았던 추월산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그냥 밥만 먹고 올 수는 없었다.

등산을 위한 아무런 준비 없이

기모 청바지에 바닥이 미끄러운 단화로 오른

담양 추월산 보리암

이제 막 들기 시작한 단풍을 감상하며

쉬면서 오른 길이었지만

바닥이 미끄런운 단화차림으로는

다시는 오르고 싶지 않다.

비록 높지 않아서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미끄러운 흙길과 계단에 덮인 낙엽이 미끄러워

조심조심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안보이도록 빽빽한 숲길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헐떡이며 오르니

눈앞에 펼쳐진 넓은 시야

거대한 비단뱀처럼 이골 저 골에 파란 물을 드리운

담양댐도 한눈에 들어온다.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서 만나는

김덕령장군의 부인 순절비

광산김씨 집안의 선조로 장군의 얘기는

할아버님으로부터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왜구에게 쫓긴 부인 일행이

보리암 정상까지 도피했다가

더 이상 갈 데가 없자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로 하고

보리암 절벽에서 뛰어내려 순절했다 하여

후대에 이곳에 순절비를 세웠단다.

보리암은 추월산 정상 바로 아래

북동쪽 사면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다행하게도 절벽 사이에서 나는 석간수가 있어서

암자 입구의 지하수로 식수로 이용하고 있다.

요사채와 법당 단 두 개의 건물이 있는

작은 암자.

그래도 접근성이 좋아서

찾는 신도들이 많은 모양이다.

법당 천장을 가득 채운 소원성취의 글들을 보니.

법당 앞마당 우측 절벽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연리목

나무조차 온몸을 다해 덕을 쌓고 있다.

주차장에서 기다릴 집사람과 동생을 생각하니

오래 지체할 수도 없어

아쉬운 발걸음을 서둘러 하산했다.

추월산 정상이 코 앞인데도 다음을 기약하며.

미끄러운 신발로 내려오는 길

다 큰 긴장속 발걸음은

주차장에 이르러 안도감과 함께

다리에 힘조차 빠진 두 시간여의 추월산 보리암 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