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가평베네스트 나들이

가루라 2017. 10. 10. 00:32

유래없이 길었던 추석연휴 기간중

사위가 마련해준 사돈 내외와의 가평 베네스트CC 골프 회동.

아침 이른 시각의 전반 나인 홀은 안개 속에서 출발했지만

후반은 활짝 갠 하늘과 먼 산에 걸친 구름 속에

마치 두 집안의 환한 미래를 예견해주는 듯해 너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년 전 결혼했던 딸아이는

우리 부부보다는 조금 젊은 시부모님의 아직은 할머니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말 때문이었는지

딩크족의 삶이 부러웠던 것인지 바로 아이를 갖지 않았었지요.

그러다가 나중에 결혼한 제 남동생이 결혼하던 해에 아이를 갖게 되자

초조했던 것인지 뒤늦게 아이를 갖고자 했지만 잘 되지 않다가

한약의 도움을 받고서야

친손자보다 5개월 늦은 외손자를 출산했었습니다.

그 바람에 작년 한 해에 친손자, 외손자 둘을 동시에 보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며늘아이는 손자를 돌보면서 어디가 불편해도 시어머니에게 말을 하지 못하지만

딸은 아이를 크게 낳은 탓인지 출산 후 계속 힘들다 해서

집사람은 딸네집을 자주 드나들며 육아와 살림을 도와주곤 했지요.

아이를 안아주고 빨래를 하고 집안살림을 하다보니

딸아이의 손목에 무리가 가서 무척 힘들어 했던 것이지요.

그것을 지켜보던 사위의 눈으로 보기에도 미안했던가 봅니다.

사돈댁은 우리보다 더 멀리 떨어져 사시니

딸의 시어머니께서는 돌봐주고 싶어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

뒤늦게 손자의 돌이 지날 무렵 며늘아이에게도 어디 아픈데 없느냐 물으니

괜찮다고만 하던 아이가 그제서야 이젠 물리치료를 좀 받으면 좋겠다네요.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며느리는

내심 시누이가 부러웠겠지만 말도 못하고 속을 끓였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진작에 물어볼 걸 그랬다 미안해 하니

오히려 그러실까봐 말씀을 더 드릴 수가 없었다 하네요.

집사람 입장에서는 딸아이가 더 안쓰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친손자를 키우는 며느리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도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 바람에 집사람은 딸네로, 아들네로 정신없이 일년여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럴 정도로 출가한 딸과 시집온 며느리를 바라보는 입장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딸처럼 생각한다고 해도 생각하는 것이지 현실은 딸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딸을 사이에 둔 사돈관계는 더 더욱 미묘할 수 밖에요.

집사람을 자주 보았던 외손자는 집사람이 안아주면 방긋방긋 웃다가도

딸아이의 시부모가 안아주면 대뜸 울면서 눈물을 보이곤 해서

우리는 더 더욱 좌불안석일 수 밖에요.

결국 집사람보다는 자주 보지 못했던 제가 안아도 그렇다고 강변하듯

제가 안아서 우는 모습을 보여야 속이 편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여러차례 지켜보았던 사위가

우리의 서먹한 그런 관계를 정리할 묘안을 추석날 전해왔습니다.

사돈 내외와의 부부골프를 제안한 것입니다.

오랜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데다가 목감기까지 심했지만

저로써야 골프만큼 쉽게 친해질 다른 운동이 없다 싶어 쾌히 승락했습니다.

현직에 있을 땐 업무상 골프를 자주할 수 밖에 없어서

샷을 가다듬느라 틈만 나면 집사람과 연습장을 드나들었었습니다.

IMF 이후 급격한 그룹의 해체로 평생을 다니던 회사가 대기업계열에서 팔리면서

회사에서는 골프를 제한했고

그 바람에 집사람 머리도 얹어주지 못하고 퇴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그동안 연습장마저도 끊었던 집사람에게

첫번째 필드 나들이는 수능시험을 보는듯 떨렸던 모양입니다.

다행히 나이는 아래지만 사업을 하는 사돈내외의 소탈하고 격의없는 호방한 성격 덕분에

첫 홀 그리고 두 홀째를 끝내고 나니 긴장이 금방 풀렸는지

집사람도 똑바로 나가는 공을 보고 연신 즐거워 합니다.

오늘날 사돈(査頓)관계는 옛날에 비해 훨씬 더 어려운 사이가 된 것 같습니다.

미디어의 보도에 따르면

친정 엄마가 자주 드나든다고 며느리의 뺨을 때리는 시어머니 이야기며

추석명절에 붙이던 전을 못먹게 한 시어머니 이야기까지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위세를 부렸던 시월드에 더해

신장된 여권 탓인지 요즈음은 처월드란 풍속어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님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시던 선생님 한 분은

당신의 딸이 크면 나와 결혼시키자고 언약을 하셨을만큼 두 분이 친하셨었습니다.

그처럼 옛날에는 서로 잘 아는 집안끼리 혼사를 맺은 사례가 많았음에도

구박받는 며느리이야기가 많았었습니다.

그것은 남존여비사상 외에도 잘못 정립된 사돈관계 탓도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물론 당사자간의 문제에 기인한 경우도 적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사돈의 어원을 찾아보면 몇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고려시대의 윤관대원수와 부원수 오연총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랜 전장에서 상하관계를 뛰어넘어 서로를 존경하는 친구사이가 된 두 사람은

훗날 자녀들을 결혼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관직에서 물러난 후 작은 시냇물을 마주하고 살게 됩니다.

어느 날 잘 익은 술을 보니 오연총과 한 잔하고 싶었던 윤관이 술독을 들고 시냇가에 이르렀으나

간밤에 물이 불어 시냇물을 건널 수 없게 되었더랍니다.

문득 냇물 건너편을 보니 오연총도 하인에게 술독을 지워 윤관에게 찾아오는 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냇가에 있던 나무에 기대앉아 서로를 마주보고

각자 가져온 술로 술을 권하면 그 술이 상대방이 준 것으로 알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려 인사(頓首)하고 술을 마시기로 합니다.

후대에 이를 일컬어 나무에 기대어 절을 하는 사이 즉 사돈(査頓)관계라 불렀다 하네요.

물론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라 하지만

양가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

자녀들도 그를 보고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지 않을까요?

아름다운 가평 베네스트CC의 풍광을 뒤로 하고

후식으로 먹었던 숯불닭갈비와 귀가길의 아름다운 하늘조차도

양가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석 연휴 중 이벤트였습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사위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우리는 며느리의 친정부모와 무슨 추억을 만들지 고민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