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산에서 다시 찾은 안경

가루라 2019. 2. 27. 01:40

잃어버렸던 제 눈을 되찾을 수 있게 해주신

알 수 없는 등산객께 감사드립니다.


일요일 오후 늦은 시각

최악의 미세먼지라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속을 달랠겸 홍제천변 산책길을 찾았습니다.

중대백로의 우아한 비행을 사진으로 담고 돌아 오는 길

눈까지 따끔거린다는 집사람을 먼저 보내고

오색딱따구리를 따라

옥천암에서 탕춘대 능선 끝자락을 올랐습니다.

열심히 먹이활동을 하는 새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쪼그려 앉기도 하고한동안 제자리에서 숨죽이고 연신 셔터만 누르기도 했습니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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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딱따구리

쇠딱따구리 

딱새

집에서 나올 때부터

눈을 보호한답시고 커다란 썬그라스를 쓰고

안경은 담은 사진을 확인할 때만 쓰기 위해

자켓 윗주머니에 꽂아두었었지요.

그리고는 우유빛 유리창처럼 뽀얀 서쪽 하늘 너머로 넘어가는

석양을 담고 바삐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윗주머니에 꽂아둔 안경이 어디선가 빠져버렸다는 것을

집에 거의 다와서야 알았습니다.

값비싼 일제 호야 다초점렌즈에 고급 수입 안경태.

거금을 주고 4년 전에 맞추었던 소중한 제 눈.

몇 번을 뒤집어 생각하고

나가기 싫다는 집사람을 어거지로 끌고 나갔던 걸 후회해도

이미 내 손에 없는 안경.

황망한 마음에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며

흘렸을 만한 곳을 찾아 보았지만 절망스러운 마음처럼

캄캄한 어둠만 가로 막을 뿐...

어떻게 밤을 지샜는지 모르게 아침을 맞아

빠졌을만한 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땅바닥의 수 많은 발자국을 보니

그 사이 이미 밟혀서 망가져 버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 집어 가버렸을 수도 있을 거란 불길한 예감을 애써 누르며

땅바닥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나라면 길바닥에 떨어진 안경이 밟혀 망가질 수도 있으니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고 보니

족제비싸리 가지에 두 눈을 반짝이며

정신 나간 주인을 바라보는 제 안경이 보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한 달 전쯤 귀경길 휴게소에서

누군가 놓고 간 휴대폰을 주워 안내소에 맡겼던 생각이 납니다.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대부분 분실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을 되짚어 찾아 갈 것입니다.

나도 등산이나 산책길에 분실물을 발견할 경우

눈에 잘 띄이게 길가의 나뭇가지에 걸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안경태와 색깔이 비슷한 계절.

얼핏 보아서는 안경과 나뭇가지가 구별이 쉽지 않지만

빠뜨렸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이었기에

그나마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찾아 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고마우신 분.

그런 분들 덕분에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곳입니다.

다시한번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