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가는 길에 잠깐 들른 가을 한낮의 주산지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산지에 대한 나의 환상은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 속의
몽환적 풍경에서 비롯된 것일 것입니다.
저수지 한가운데 떠 있는 고즈넉한 사찰 한 채
그리고 저수지를 덮은 짙은 물안개
작은 쪽배 한 척
수면 속의 풍경과 정확하게 대칭점을 이루는 주변 전경
거기에 더해서 서정적으로 전개되는 느릿한 스토리
영화 속의 배경을
상상으로 그려진 셋트로만 알았었지요.
사진작가들을 중심으로
영화 속 배경이었던 주산지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담아
아름다운 작품 사진으로 출품되기 시작하면서
주산지는 마침내 세상에 그 모습을 샅샅이 드러내게 되지요.
소문을 타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진사들로 인해
수변은 뭉개지고
모두에게 공개되는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
주산지의 몽환적 신비성은 점점 사라지게 되는 게 아닐까요?
작품을 만들기 위한 전문 출사가 아니라
관광버스에 의지해 당일치기로 주왕산을 다녀오는 경로에
말 그대로 잠깐 주산지를 들르는 시간을 받아
잠깐 훑어보고 오는 것이 이번 주산지 나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시간조차 한낮 점심무렵
햇살조차 정면에서 그대로 밀고 들어 오고
이런 조건에서
내 실력으로 멋진 사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밖에 없었지요.
날씨까지도 서울에서는 최악의 미세먼지 경보가 내려진 날에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서
수면은 온통 낙엽으로 뒤덮이고
명경지수 같아야 할 작은 저수지의 수면조차
쉴새 없이 물비늘이 날을 세우던 날
사진으로 담기에는 최악의 조건인 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밑둥치로 물속에 주저앉아 있는
수령을 알 수조차 없는 노회한 왕버드나무의 연녹색 잎과
검은 색 줄기의 조화
붉게 물든 산벚나무 잎과 연녹색의 왕버드나무 잎이
조화롭게 어울려 보이는 가을풍경
수면에 투영되는 자유분방하게 자란 가지의 그림자
사진으로 담기에 최상의 날, 최적의 시간에
주산지에 와 있어야 할 명분을
충분히 만들어 줄만큼 아름답게 보입니다.
관광버스 기사로부터 주어진 시간은 단 한 시간
주차장에서 부터 왕복 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제외하면
주산지에 머무는 시간이 고작 20분여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 주산지의 가을 산책이었습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누구나 그렇듯
주산지의 가을 새벽 풍경을 담기 위한 출사를
내심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뭇 사진작가들이 담는 것과 판박이처럼 똑 같은 사진을 담기 위해
주산지 새벽 출사를 감행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목책을 세워 수변의 접근을 막아 놓았는데
수면 가까이에서 사진을 담기 위해
넘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목책을 넘어야 할 지
다시 생각해 보는 날이었네요.
주산지 제방 입구에서 | 제방에서 본 주산지 전경 |
주산지 가는 길 낙엽송 단풍 숲
주산지 가고 오는 길에 담은 산길 주변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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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 가는 길 | 낙엽송 단풍 | 주산지 가는 길 |
주산지 주차장에서 담은 주왕산 방면 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