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318

버들강아지 움트는 봄

옛날에는 주변에서 이른 봄에 피는 화초를 특별히 볼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개울가의 버들강아지가 움트면 봄이라 했다. 꽃송이가 보송보송한 솜털로 둘러싸여서 마치 강아지풀 꽃송이처럼 보여서 버들강아지라 불렀지만 그것이 갯버들이라는 것은 성인이 되고도 한참 후의 일이다. 특별한 놀이기구나 장난감이 없었던 60년대 시골 아이들은 그저 몸을 쓰며 뛰는 것이 놀이였었다. 그렇게 뛰어다니다 목이 마르면 개울가의 버들강아지를 한 움큼씩 따서 입에 넣고 씹으면 입안에 고이는 즙액으로 갈증을 해소했었다. 그리고는 버들가지를 꺾어서 굵은쪽 줄기의 수피를 세 갈래로 찢어 조금 벗긴 후 줄기에 감아 손가락으로 쥐고 다른 손으로 줄기를 돌렸다. 물이 오른 개버들 줄기는 속 가지와 겉 수피가 쉽게 분리되었고 분리된 원통형 수피..

뚱딴지 이야기

어린 시절에 불렀던 이름은 돼지감자 노란 꽃이 예뻐서 요즈음 화초로도 많이 심는 뚱딴지 어린 시절 고향집 사랑채 앞 화단 한편에는 키가 나보다 훨씬 큰 돼지감자가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가을이면 알뿌리를 캐서 돼지에게 주곤 하셨다. 당시에 캤었던 알뿌리는 달리아 뿌리처럼 컸어서 요즈음 보는 뚱딴지와는 다른 종이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잎과 꽃은 전혀 감자 같지 않은데 뚱딴지 같이 감자를 닮은 뿌리가 나온다고 붙여졌다는 이름은 다분히 해학적이다. 돼지 사료로 썼던 그 뚱딴지를 요즈음 약용으로 재배하기도 한다. 몇 년 전 조부모님 제사에 참사하러 오신 숙부님께서 직접 기르신 뚱딴지를 한 상자 주시고 가셨다. 쪄먹기도 하고 장조림으로 먹어도 좋다 하셔서 어린 시절 돼지 사료로 주었던 생각에 조금은 찝찝하기도 했..

설날의 단상

지금의 민속의 명절로 부르는 설날 이런 밤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집안의 일을 도와주는 일꾼까지 한 집에서 총 13~14명이 살았었다. 설 전날 밤이면 어머님께서는 우리들 앞에 설빔을 풀어놓으셨다. 새 옷이거나 때로는 고무신이거나 내복 등 매년 다른 설빔을 주셨었다. 설날이면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따라 어두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차례를 지내고 마루에 나가 안방에 앉아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그리고 이어서 어머니, 아버지께 세배를 드리고 떡국을 간단하게 조금씩 먹었다. 겨울용 검은 두루마기에 갓을 쓰신 할아버지 뒤를 따라 눈길을 걸어 큰집(하아버지의 큰 형님댁)에 차례를 지내러 가곤 했다. 큰집에서 떡국을 먹고 집에 돌아오면 삼촌들과 동생들 함께 동네 일가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러 갔었다. 집성촌이라 세..

북두칠성을 잊었던 사람들

밤하늘이 비교적 맑았던 1월 중순 밤 북쪽 하늘에 선명한 북두칠성을 담아 페북에 북두칠성이 보이나요? 하고 올렸었다. 그 사진에 7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1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서울 하늘에도 북두칠성이 있나요?" "국민학교시절에 보고는 잊었던 것 같아요." "요즘 하늘 쳐다보기 힘든데 핸드폰에서 별을 보네요." "오랜만에 봅니다. 북두칠성" "북두칠성은 여전히 떠오르나 보네요. 하늘의 별을 찾아본 지가 언제인지." "보입니다. 국자모양이라고 국민학교 때 배웠던 기억이..." "예전 시골에서는 많이 봤는데 도시생활 후로는 보기힘든 북두칠성을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시력 테스트 하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네, 보여요. 어릴적 선명하게 보고 자랐던 추억이 그리워요...

탕춘대성 성곽길의 메밀꽃 군락이 궁금하다.

홍지문에서 탕춘대성을 따라 인왕산을 오르다 만난 메밀꽃 군락 인왕산을 오를 때 자주 이용하는 코스지만 메밀꽃군락지가 나타난 것은 올해 처음이다. 예전에도 기차바위에 도달하기 전 두어 곳에서 메밀꽃 몇 개체를 보았지만 인왕산 산등성이에 왜 메밀꽃이 있을까 궁금했었다. 개체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새들의 배설물로 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지만 서울에서 메밀을 경작할만한 경작지가 떠오르지 않아서 의구심은 더 커졌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쯤 군초소 북쪽 능선에서 문화재발굴작업을 하느라 산을 헤집어 놓은 것을 보았다. 탕춘대성의 성곽이 일부 땅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던 구간일 것이다. 탕춘대성은 북한산성과 한양도성을 연결하는 약 4Km 구간으로 북한산 비봉아래에서 시작하여 인왕산 동북쪽 한양도성을 연결하는 성곽이다..

비둘기 사랑

가정의 달 6월이 끝났다. 5월의 막바지에 눈으로 본 비둘기의 사랑 노랫말에도 등장할 만큼 비둘기의 사랑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들로부터 새대가리라고 모욕당함에도 불구하고 조류들 중에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사례들을 볼 수 있다. 금슬이 좋은 한쌍중 일방이 죽으면 다른 한 마리는 무리를 떠나 수절까지 한다니 요즘 인간들 중에는 새대가리보다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

인왕산 화재현장을 보다.

2023년 4월 2일 인왕산에 화재가 발생했다. 서울 생활 40여 년에 서울 도심에서 산불을 볼 줄이야... 소방헬기 두대가 숨 가쁘게 오고 가는 것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었다. 1972년 학창 시절에 산불을 끄러 갔었던 경험이 있어서 더욱더 그러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만에 인왕산을 찾았다가 목도한 참혹한 현장에 가슴이 미어졌다. 온통 잿더미가 되어버린 숲 한 달 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 널브러져 타버린 소나무는 마치 숯막을 방불케 했다. 홍지문쪽에서 오르는 기차바위 초입까지 화기로 인해 소나무는 노랗게 변해버렸다. 그래도 반쯤 타나 남은 소나무는 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그것이 더 안타깝게 만들었다. 기차바위에서 내려다본 인왕산 북서쪽 사면의 개미마을까지 타 내려갔지만 민..

연등행렬 사진

5월 20일 종로에서 펼쳐진 연등행렬 야간 사진 연습을 위한 좋은 소재거리로 생각하고 참관했지만 한계를 절감한 시간이었다. 코로나가 풀리고 처음 열린 연등회여서 그런지 아니면 그전부터 이렇게 사람이 많았었는지 처음 참석한 나로서는 일 수 없었지만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인파에 놀라고 행사 참여 인원과 규모에 또 놀랐다. 단순히 불교 행사로만 생각했었는데 연등회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음을 처음 알게 된 내가 부끄럽다. 불자와 불교신도들이야 사명감에 긴 시간 행렬에 참석한 것이겠지만 구경하는 관중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더구나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다 모인 듯 연등회를 보러 온 외국인들이 이렇게 많은 것에 또 놀라운 밤이었다. 유등이나 청계천 유등처럼 한자리에 고정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