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에서 아미르 티무르광장으로 가는 길

이름모를 가로수 사이로 반듯하게 난 도로

완전한 보행자만을 위한 도로다.

도로의 한 복판에는 징기스칸 이후 중앙아시아의 위대한 정복자로 불리우는 아미르 티무르 대제의 동상이 있다.

아미르 티무르(Amir Timur)대제는 몽골족의 후예로 1336년에 태어나 1405년에 사망했다.

징기스칸 사후 몽골은 지역에 따라 오고타이, 차카타이, 킵차크, 일 한국등

네개의 한국으로 나뉘어 징기스칸이 정복한 광활한 땅을 지배하였다.

몽골의 지배력이 약해지자

아미르 티무르는 차카타이, 킵차크, 일한국의 영토를 차례로 점령하고

서쪽으로는 지중해 연안의 이집트, 바그다드, 이스탄불을 정벌하여 이를 점령하였고

북서쪽으로 모스크바를 공격 약 1년간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남으로는 인도를 공격하여 일부를 점령하고

동으로 명나라 원정길에 올랐다가 도중에 사망하였다.

피비린내를 몰고오는 정복자로 불리우던 그의 역할에 대하여 재조명하는 책이

국내에서 출간되기도 할만큼 동서양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민족이 역사의 전면에 들어난게 13세기 중엽

게다가 현대사에 들어서서는 러시아의 연방으로 가려져 있다가

1991년 러시아로부터 분리 독립하면서 재조명되고 있단다. 

광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백조

걍 가금으로 키운 백조인지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유유자적 뒤뚱뒤뚱 걸어 다닌다.

   광장을 바라보고 좌측에 있는 타쉬켄트 아무르 티무르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저기 손님을 기다리는 대우차들과 우리들의 할아버지같은 친숙한 얼굴들

타쉬켄트 아미르 티무르박물관은 이슬람식 푸른 지붕에 벽면과 유리칭을 이슬람문양으로 장식하였다.

20만여점의 유물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는데

안타깝게도 휴관이어서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광장 건너편에 보이는 유럽풍 타쉬켄트시계탑건물이 세련된 모습으로 서있다.

박물관 앞에서 광장을 바라보면 오른쪽에 오래된 벽돌 건물이 보인다.

타쉬켄트 국립법과대학(Toshkent Davlat Yuridik Instuti)이다.

학생수 2,182명, 교직원 221명 1875년에 만들어졌다.

이 대학을 졸업하는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은 장래가 보장된다는데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정도 되시겠다.

현지가이드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처럼 넓은 캠퍼스를 가진 종합대학체제가 아닌 단과대학체제로 운영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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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건물앞 도로 

 대학표지석

건물정초 표지판 

구소련시대에는 마르크스의 동상이 서있는 붉은 광장이었다는 아미르 티무르광장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광장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여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의 큰 축이었던 아미르 티무르대제의 기마상을 세웠다.

동상 뒤편 좌측으로 우즈베키스탄 최고의 호텔이었다는 호텔 우즈베키스탄이 서 있고

오른쪽에는 지붕을 국조인 학으로 장식한 미려한 건물 포럼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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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티무르광장 

티무르대제 기마상 

포럼센터 지붕의 학 

대제 동상과 포럼센터 

잔뜩 흐린 하늘마저 아직도 잔설이 남아 도는 겨울공원의 을씨년스러움을 더한다.

아무르 티무르광장에서 바라 본 이스트크롤가(Istiklol St.)의 가로등 장식이 멋지다.

 아미르 티무르광장과 정중앙으로 면하고 있는 사일곡흐가(Sailgokh St.)

무스타낄릭(Mustakillik)광장은 저 도로 끝에 있다.

예전엔 오래된 나무가 울창하게 있었다는데

좋은 안식처를 주던 그 큰 나무들을 모두 베어 버리고 다시 조성했다는 아미르 티무르광장

마치 광화문광장과 닮은 꼴이어서 씁쓸한 뒷맛으로 돌아선다.

타쉬켄트 시내에서 가 볼만 곳을 돌아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슬람사원과 TV타워를 제외하고는

거의 지척지간에 있어서 도보로도 한바퀴를 돌아 보는데 불편함이 없다.

나보이 극장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려서

브로드웨이거리, 박물관, 아무르티무르광장 순으로 둘러 보기로 한다.

 

<나보이극장>

시간관계상 정면이나 내부를 가 볼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나뭇사이로 뒷면만 담아본다.

나보이극장의 정식 명칭은 알리세르 나보이 오페라와 발레극장(Arisher Navoi Opera and Ballet Theatre)이다.

볼쇼이와 함께 구 소련시대 3대 극장으로 명성을 누렸던 예술 명소로

중아시아 정치가이자 미술가, 위그르 전통시인이던 알리세르 나보이의 이름을 따서 지었단다.

강한 지진에도 견딜 수 있을만큼 튼튼하게 지어졌다는 극장은

아리러니칼하게도 2차대전때 잡힌 일본군포로들의 손에 의해 지어졌다니

그 중에는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되었던 우리 할아버지들도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나보이극장 인근의 건물, 모자이크 타일벽화가 시선을 끈다.

 줌으로 당겨본다. 아마도 노동가치를 높이 평가하던 구 소련시대의 사회주의 예술적 흔적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리석 석조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브로드웨이거리 초입, 아이보리색으로 도색된 대형 쇼핑몰의 깔끔한 외벽

눈이 왔음에도 거리는 깨끗하다. 

 주말이면 젊은이들로 넘쳐 난다는 브로드웨이거리

평일 추운 날씨임에도 삼삼오오 모여든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거리라는 이름은 이 간판에서 온 거란다.

젊은이들의 취향을 자극하는 명품 매장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광장에는 주말이면 간단한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도 있고

 개인 전시관을 갖지 못한 미술가들은 그림을 들고 이 거리로 나온단다.

초상화도 그려주고, 우즈베키스탄의 명물 가죽에 그린 그림들을 전시해 놓고 팔기도 한단다.

가격을 물어 보니 호수가 큰 것은 제법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브로드웨이거리 풍경

 브로드웨이거리에서 아무르 티무르광장으로 연결되는 직선도로.

저 멀리 광장의 아무르 티무르 동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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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켄트 시내에는 오래 머물며 볼만한 곳이 별로 없단다.

오랜 고도 사마르칸트나 부하라에나 가야 볼만한 유적지가 많고..

다행이 타쉬켄트에서의 일정이 빠듯하여

출국전 단 하루를 둘러 볼 자투리 시간

압둘카심사원에서 시작하여 브로드웨이거리, 아무르티무르광장, 무스따낄릭, 철수바자르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린 이곳이 타쉬켄트TV타워란다.

 

아마도 타쉬켄트에서 체류한 관광객치고

TV타워를 오르지 아니하면 타쉬켄트를 보았다 할 것이 없을 만큼

타쉬켄트시내를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달 볼 수 있는 장소다.

타워에 올라 보면 어디를 둘러봐도 지평선만 보일만큼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도심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 TV타워를 올라야만

타쉬켄트 시내를 조망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타쉬켄트 TV타워는 1978년에 착공하여 1985년 1월에 준공되었단다.

TV와 라디오, 그리고 통산탑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관광용 전망대로서의 기능까지 수행하는 복합 건축물이다. 

그런만큼 타쉬켄트 TV타워를 오르는 절차는 만만치 않다.

가방은 입구에 맡기고 맨몸으로 삼엄한 검색와 금속탐지기 검색을 거친 연후에야

타워에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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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는길, 삼성광고판 

전봇대와 나란이 

최대한 하이앵글 

 가로로 청사를 담다

375m라는데 높기는 높다.

가로로 잡으면 아무리 하이앵글로 잡아도 입구에서는 담을 수 없는 높이다.

세로로 세워서 담으니 본관 건물 일부를 잘라내고서야 담을 수 있다.

남산 서울타워가 237m, 대충 높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곳에 폭발물을 소지할 수 있다고 의심되는 가방류는 모두 맡기고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한다.

이중으로된 검색대를 통과하여 복도로 진입하면

서울남산타워, 도교타워, 런던타워 등 세계고층탑연맹(World Federation of Great Tower)에 가입된

각국의 탑 조형물과 높이를 기록하여 비교할 수 있게 해 놓았다.

타쉬켄트 TV타워를 착공할 때만해도 세계 4위를 점하는 높이였으나

지금은 세계 9위로 밀려 났다지만

그나마 중앙아시아에서는 가장 높은 탑이라는 그들의 자부심이 강하게 느껴진다.

 

반가운 서울타워와 태극기를 보고 쫓아가 본다.

아뿔사 해외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라더니

우리나라 태극기의 태극문양이 잘못 표기되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현지 공관에 잘못된 부분을 전달해 주고 왔지만 시정이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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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타워 조형물 

조형물에 게양된 태극기 

서울타워 설명 표지판 

 타쉬켄트 TV타워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중앙몸통과 격자형구조물, 그리고 삼각대를 이루는 기초부분이다.

삼각대를 이루는 기초기둥은 직경이 15m

중앙 몸통의 직경은 32m란다.

몸통의 기초부분은 역동적인 문양을 타일부착기법에 요철을 주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몸통 타일 장식 

 몸통 타일 장식

중앙몸통에는 약100m 정도를 고속 엘리베이터로 오르면 격자형구조물로 쌓인 전망대와

간단한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매점이 있다.

 이곳에서 220m의 회전식당에까지 오르려면 추가로 또 돈을 내야한단다.

회전식당 지붕인 223.4m부터 375m는 안테나부분이다.

회전식당은 걍 포기하고 타쉬켄트 도심풍경을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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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원경 

도심원경 

아쿠아파르크 

사원원경 

도심원경 

아기자기한 구도심 주택을 줌으로 잡아 본다.

 깨끗하게 잘 정돈된 수로와 산뜻한 하늘색 지붕이 돋보이는 사원

 구도심 주택가 골목길 풍경을 줌으로 담았다.

 낯선 이국적 체험을 하는 동안 하늘이 만들어낸 빛내림

격자형 케이지의 구조로 인해 유리창 청소가 불가능했는지 화질이 좋지 않다.

 타쉬켄트 TV타워 입구에서 만나는 철로

여행지에서의 경험은 그저 볼 수 있는 시각으로 바라볼뿐 그 속에 하나가 될 수는 없다.

마치 선로를 가로막는 쇠창살처럼....


타쉬켄트 체류기간내내 한국식당만을 찾는 나를 보고

현지인은 서운했는지 우즈벡에 왔으면 기름밥을 반드시 먹어야 한단다.

기름밥이 뭔지는 모르지만 웬만한 소화력이 아니면 탈이 난다지만

집으로 초대하겠다는 후의에 감사하며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우즈베키스탄의 유명한 현지음식중의 하나 쁠로프

우리말로 기름볶음밥이다.

말고기와 쌀 기타 당근, 양파, 마늘 등을 잘게 썰어넣어 목화유에 볶은 밥이다.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 웬만큼 장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배탈난다는 현지 주재원의 설명에

호기롭게 말한다.

나는 어디를 가나 음식만큼은 잘 먹는다고....

그러나 그날밤 호텔에서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려야했다 ㅋㅋㅋ

 

타쉬켄트 교외에 있는 그의 집은 농장이 딸려 있는 대저택이었다.

정원에 포석정 같은 연못을 파고

우즈베키스탄의 국조인 백학 조형물을 세워 놓았다.

농장은 10만평이 훨씬 넘어 말을 타고 한참을 달려야 할만큼 넓은데

자신은 보통 수준의 재력가란다.

 

전직 의사출신인 70대 중반의 부친과 모친 그리고

아들 둘에 딸하나 며느리까지 3대 8인 가족에 도우미까지 각자의 방에

가족 전용 예배홀까지 둘 정도로 큰 집이다.

 

갑작스런 결정으로 선물도 준비하지 못하고 초대에 응하는 머쓱함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의 가족은 우리 일행을 편안하게 맞아 준다.

 음식상 세팅이 한창이다.

전통빵 리뽀시카와 쁠로프, 견과류들, 보드카까지

 이것이 문제의 쁠로프(기름밥)다.

다행이 김치까지 있어서 먹는 건 정말 맛있게 먹었다.

김치는 우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 아니고

그 친구 가족도 즐겨 먹는단다.

 큰상 가득히 차려진 음식에 무얼 먹었는지도 모르게 먹었으나

그 날밤 쁠로프의 위력은 나로 하여금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게 만들었다.

보드카의 위력인지 다행이 다음날 아침 말끔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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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서 있는 이가 주인)  

홀에서 

가족과 함께 

우리 민족과 정서가 비슷한 점이 많은 우즈베키스탄인들

아마도 몽골의 후예 4한국 중 킵차크한국의 지배를 받는 동안 축적된 문화 탓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와 물리적 거리로 무려 1800Km 이상이 떨어져 있는데도

여러가지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유사점들을 발견되는 것이 흥미롭다. 

우즈베키스탄 서민들의 풍물을 볼 수 있는 타쉬켄트의 시장, 철수(Chorsu)바자르를 찾았다.

특별히 시장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딱히 정해 놓은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와는 다른 그들만의 삶이 어떻게 움직여지는지 궁금하고

그것을 가장 확연하게 인식할 수 있는 곳이 시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가이드의 의견도 한국사람들이 오면

즐겨 찾는 시장을 보여 주겠다 한다.

철수 프라자(Chorsu Plaza)를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의상으로부터 양탄자, 피혁 기념품등을 파는 곳으로부터

바로 옆에 말 그대로의 재래식 노천시장이 큰 규모로 자리 잡고 있다.

타쉬켄트 시내에서 가장 큰 노천시장 바자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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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예복 판매점

카페트 피혁제품 판매점 

토우판매 노점 

우즈베키스탄은 시장환율과 정부환율의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시장에서 환전을 한다.

요즈음은 여기저기 경찰이 숨어 있어서

암시장에서 환전하다 체포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데도

정부환율이 시장환율의 약 70% 정도 수준이니

위험을 무릅쓰고 암시장을 찾는단다.

미화 100달러를 환전하는데 216,000숨 정도

상의 주머니 여기저기에 넣고 바지주머니에 넣어도 남을 정도다.

그래서 언젠가 TV에서 봤던 것처럼 돈가방을 따로 가지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이러한 부적절한 환율체제 때문에 현지에 진출한 교포 사업가들도

수출입을 해도 달러 결재가 1년씩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해서

적잖히 애를 먹는단다.

지하철에서 철수프라자로 가는 사람들 

소박하게 만들어진 철수지하철역 출입구 

재래시장 

좌측전면 철책안이 주차장 

넓고 길게 자리잡은 재래시장 

재래시장 내부로 들어가 본다.

우리내 5일장 시장 같은 구조에 과일, 빵, 고기, 야채, 약재 등 없는게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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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땅속줄기채소 들 

 과일, 채소 등 판매점

내가 좋아하는 석류 

채 돌아 보지 못하고 다른 시장으로 가 본다.

의류판매 전문상가

 잡화, 공산품 판매상가. 공인환전소도 보인다.

또다른 음식물 시장가에도 찾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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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 판매대 

기름밥 

사슬릭(양꼬치구이) 

순대 등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현지인과 다른 식습관을 가진 외국인은

여기서 음식을 사먹으면 배탈날 가능성이 있다고 가이드는 권하지 않는다.

시장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 아치형 입구 아랍 전통문양의 천장이 이채롭다.

 분수대는 에일리언에 나오는 코쿤같기도 하고 연꽃 봉오리 같기도한 장식으로 포장되어 있는데

현지 가이드도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모른단다.

 노천시장, 바자르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 또다시 눈발이 날린다.

영어로 Chorsu Plaza라 되어 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름 철수 바자르로 알려진 것이 오히려 더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 

우즈베키스스탄은 약 72개 언어를 사용하는 2,500만의 다민족 국가란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있다 보니

러시아인을 제외한 약 72% 정도로 주류를 이루는 우즈벡인과

타지크, 칼라파크, 키르키즈, 투르크멘, 타타르, 터키

거기에 스탈린의 이주정책에 의해 정착한 우리민족 고려인까지

많은 황인종이 인종분규도 없이 조화롭게 살아간단다.

게다가 그들은 이방인에게 관심도 많고

친절하기까지하다.

 

타쉬켄트 외곽에서 60년대의 우리나라 시골 골목 풍경을 만난다.

아마도 농경사회가 주축을 이루는 동양문화권의 생활상은 비슷하였으리라 생각된다.

한없이 포근하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볏짚과 황토를 짓이겨 만든 토담

조그만 도랑의 물막이 등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농업이 주류를 이루던 60년대 고향집 골목을 보는듯 반갑다.

게다가 골목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도 우리나라의 대우차여서

더욱 친근감이 든다.

 

벽은 우리나라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

아마도 추위로부터 실내온도를 유지하려는 것인가보다.

가는 나무 기둥을 세우고 볏집, 왕겨 등을 황토와 뒤섞어 발른 벽 

 도랑과 간이 수문

 아이를 안고 가는 우즈벡 아낙

콩밭 메는 김태희한테 잡히지마라는 말처럼

이쁘 여자 천지라는데 추위에 다 집안에 숨었는지 볼 수가 없다.

이층집의 벽체도 토담이다.

 눈에 익숙한 대우차와 골목

60년대 읍내 풍경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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