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행차/타쉬켄트

타쉬켄트여행-아미르 티무르광장

가루라 2012. 7. 1. 12:45

브로드웨이에서 아미르 티무르광장으로 가는 길

이름모를 가로수 사이로 반듯하게 난 도로

완전한 보행자만을 위한 도로다.

도로의 한 복판에는 징기스칸 이후 중앙아시아의 위대한 정복자로 불리우는 아미르 티무르 대제의 동상이 있다.

아미르 티무르(Amir Timur)대제는 몽골족의 후예로 1336년에 태어나 1405년에 사망했다.

징기스칸 사후 몽골은 지역에 따라 오고타이, 차카타이, 킵차크, 일 한국등

네개의 한국으로 나뉘어 징기스칸이 정복한 광활한 땅을 지배하였다.

몽골의 지배력이 약해지자

아미르 티무르는 차카타이, 킵차크, 일한국의 영토를 차례로 점령하고

서쪽으로는 지중해 연안의 이집트, 바그다드, 이스탄불을 정벌하여 이를 점령하였고

북서쪽으로 모스크바를 공격 약 1년간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남으로는 인도를 공격하여 일부를 점령하고

동으로 명나라 원정길에 올랐다가 도중에 사망하였다.

피비린내를 몰고오는 정복자로 불리우던 그의 역할에 대하여 재조명하는 책이

국내에서 출간되기도 할만큼 동서양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민족이 역사의 전면에 들어난게 13세기 중엽

게다가 현대사에 들어서서는 러시아의 연방으로 가려져 있다가

1991년 러시아로부터 분리 독립하면서 재조명되고 있단다. 

광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백조

걍 가금으로 키운 백조인지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유유자적 뒤뚱뒤뚱 걸어 다닌다.

   광장을 바라보고 좌측에 있는 타쉬켄트 아무르 티무르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저기 손님을 기다리는 대우차들과 우리들의 할아버지같은 친숙한 얼굴들

타쉬켄트 아미르 티무르박물관은 이슬람식 푸른 지붕에 벽면과 유리칭을 이슬람문양으로 장식하였다.

20만여점의 유물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는데

안타깝게도 휴관이어서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광장 건너편에 보이는 유럽풍 타쉬켄트시계탑건물이 세련된 모습으로 서있다.

박물관 앞에서 광장을 바라보면 오른쪽에 오래된 벽돌 건물이 보인다.

타쉬켄트 국립법과대학(Toshkent Davlat Yuridik Instuti)이다.

학생수 2,182명, 교직원 221명 1875년에 만들어졌다.

이 대학을 졸업하는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은 장래가 보장된다는데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정도 되시겠다.

현지가이드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처럼 넓은 캠퍼스를 가진 종합대학체제가 아닌 단과대학체제로 운영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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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건물앞 도로 

 대학표지석

건물정초 표지판 

구소련시대에는 마르크스의 동상이 서있는 붉은 광장이었다는 아미르 티무르광장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광장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여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의 큰 축이었던 아미르 티무르대제의 기마상을 세웠다.

동상 뒤편 좌측으로 우즈베키스탄 최고의 호텔이었다는 호텔 우즈베키스탄이 서 있고

오른쪽에는 지붕을 국조인 학으로 장식한 미려한 건물 포럼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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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티무르광장 

티무르대제 기마상 

포럼센터 지붕의 학 

대제 동상과 포럼센터 

잔뜩 흐린 하늘마저 아직도 잔설이 남아 도는 겨울공원의 을씨년스러움을 더한다.

아무르 티무르광장에서 바라 본 이스트크롤가(Istiklol St.)의 가로등 장식이 멋지다.

 아미르 티무르광장과 정중앙으로 면하고 있는 사일곡흐가(Sailgokh St.)

무스타낄릭(Mustakillik)광장은 저 도로 끝에 있다.

예전엔 오래된 나무가 울창하게 있었다는데

좋은 안식처를 주던 그 큰 나무들을 모두 베어 버리고 다시 조성했다는 아미르 티무르광장

마치 광화문광장과 닮은 꼴이어서 씁쓸한 뒷맛으로 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