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에 있는 친구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상경하는 길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문경새재(조령:鳥嶺)을 찾았습니다.
예전 직장에 있을 때 화양계곡에 있는 연수원을 다녀오는 길에
문경새재휴게소에 잠시 들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금방 새재를 다녀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뭐가 그리도 발목을 잡았는지 십수년만에 찾았네요.
새조차 넘기 힘들다는데 사람인들 쉽게 찾을 수 있었을까요?
<영남제1관 주흘관>
괴산을 출발하여 문경새재관광단지 주차장에 차를 두고 출발합니다.
휴일을 맞아 찾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주차장은 워낙 넓어서 얼마나 더 많은 차를 수용할 수 있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여느 관광지처럼 매표소를 향하는 길 좌우에는
식당과 기념품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습니다.
옛길박물관 앞에서 우리는 전기차를 타고 가기로 합니다.
상경할 시간을 고려하여
왕복 8.6km나 되는 제2관문까지만 갔다가 그 길을 따라 돌아올 예정이라
제1관문 안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는 것은 주차장까지 걸어 올 예정입니다
옛길박물관은 시간관계상 둘러보지도 못합니다.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서
단체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쉽네요.
옛길박물관 | 옛길박물관 |
제1관문 안쪽까지 타고 갈 전기자동차입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걸어서 올라가는데
그들을 앞을 전기차로 횡~~~ 지나쳐 갑니다.
영남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이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어차피 돌아올 때 다시 볼 요량이라
전체적인 느낌만 보고 지나갑니다.
경상북도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영동면 경계에 있는 문경새재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제1대로 중 한 구간으로
조선 태종 13년(1413년) 개통되었다고 합니다.
수 많은 영남의 선비들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조차 등용문에 드는 길이라고
부러 우회하여 문경새재를 넘었다는군요.
당시에는 길이 이렇게 넓지도 평편하지도 않았을 터
오늘날 제2관문을 향해 걷는 흙길이 당시 선비들의 눈에는 탄탄대로 보였을듯 싶네요.
잘 정비된 계곡의 수로에는 버들치들만 옛선비들처럼 유유자적해 보입니다.
제2관문 가는 길 | 버들치 |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에 있는 조령원터(鳥嶺院址)입니다.
조령원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공용목적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공익시설이었다고 하네요.
새재의 구간에는 세 곳의 이런 공익시설이 있었다고 하니
정말 새도 넘기 힘든 고개였었나 봅니다.
산에 있는 바위에 무슨 주인이 있었겠습니까만
굳이 무주암(無主巖)이라 이름 붙인 연유가 무엇일까요?
새재를 넘나들던 선비들의 넉넉한 선비정신이 느껴집니다.
교귀정(交龜亭) 인근 바위에는
경상감사 도임 행차도가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처마선이 날아갈듯 하늘 높이 치솟는 팔작지붕의 교귀정
교귀정은 신임 감사와 이임 감사가 업무와 관인을 인수인계 하던 곳이랍니다.
용추폭포 옆에 세워졌던 교귀정이 구한말 불타 없어졌던 것을
1999년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지만
조령용추정(鳥嶺龍湫亭)이라는 한시비(漢詩碑)는
옛날 이 곳에 용추정이라는 정자가 따로 있었음을 말하는 것인지
교귀정을 용추정이라 불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용추폭포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고
제2관문으로 가는 길 계곡물이 흘러 낮게 떨어지는 곳에
응암폭포(鷹巖瀑布)가 있네요.
자연적인 폭포는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낙차가 자연스럽게 작은 폭포를 이룹니다.
제법 시원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는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심신을 달래주는듯 소리 높여 웁니다.
이 폭포도 인공폭포인지 자연폭포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영남제2관문 조곡관(鳥谷關)입니다.
조곡관은 임란 이후 선조27년(1594년)에 축성했다고 하네요.
골짜기 안쪽 깊숙히 자리잡고 있어서
이름 그대로 새소리만 가득했을듯 싶네요.
조곡관 안쪽 일자로 하늘높이 자란 소나무 아래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습니다.
잘 다듬어진 오늘날의 길임에도
주차장에서부터 십리가 넘는 길이니 쉬어가야 하는 구간이지요.
우리 일행은 아쉬운 마음을 안고 이 곳에서 발걸음을 돌립니다.
이 곳까지 오지도 않고 중간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의 재촉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조곡관 가는 길 | 주흘관으로 돌아가는 길 |
숲은 우거지고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하늘 높이 치솟는 사이를 지나는 길
천천히 옛 선비들처럼 구름에 달가듯 걷고 싶지만 현실은...
평원석 너머에 용담폭포가 있는걸까요?
한시비를 사진으로 담아 놓고 보니
용담폭포에 대한 시였네요.
문경용담폭포(聞慶龍潭暴布)
앙간조도삼천장(仰看鳥道三千丈:쳐다보니 새재길 아득히 멀고)
하시양장십이회(下視羊腸十二回:굽어보니 구불구불 열두구비라)
시처용담천하장(是處龍潭天下壯:여기 이곳 용담폭포 참으로 볼만한데)
노뢰비우일시최(怒雷飛雨一時催:폭포소리 물보라 앞다투어 일어나네)
다시 교귀정
전임, 후임 감사간에 업무와 관인을 인수인계하던 교인처(交印處)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랍니다.
기름을 짜는 기름틀처럼 생겼다고
지름틀바우라 부릅니다.
악어의 기다란 주둥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비석처럼 기다란 바위가 도로를 향해 비스듬히 걸쳐져있네요..
문경새재관광단지 안에는 드라마와 영화촬영 세트장이 있습니다.
KBS드라마 근초고왕, 역사드라마 대왕세종
그리고 영화 성균관 스캔들을 이 곳에서 촬영했나 봅니다.
이 곳 역시 시간관계상 들리지 못하고 넘어 갑니다.
세트장 가는 길 | 영화.드라마세트장 |
시멘트처럼 단단한 흙길에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할 무렵
다시 영남제1관문 주흘관 앞에 섰습니다.
주흘관은 숙종 34년인 1708년에 축조했다네요.
중성(中城)인 조곡관 보다 외성을 더 나중에 축조했다는게 특이합니다.
주흘관 밖에서 담은 풍경입니다.
성곽이 성문을 감싸안고 있는듯한 형세로 만들어
성문을 통해 침입하려는 외적을 막고
성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동태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광장처럼 넓은 주흘관 앞 전경
기다리는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합니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거쳐가는 과정 중의 하나로 들렀던 문경새재.
그야말로 주마간산격으로 두시간여만에 대충 훑어보고
관광단지내에서 점심을 들고 서둘러 상경길을 재촉합니다.
사실 이건 여행이 아니라 통과의례 같은 행위여서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문경새재길이었습니다.
조곡관에서부터 램블러를 켜서 주차장 인근까지 작동시켜보니
거리가 4.3km로 찍힙니다.
주차장에서부터 걸어서 조곡관을 왕복하려면 8.6km
제3관문까지 걸어갔다 돌아오기에는 조금 무리가 될듯 싶지만
다음에 개인적으로 올 때는 꼭 그리 해야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