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개별꽃입니다.
큰꽃으아리처럼 접두어로 '큰'이 붙었다고 해서
결코 큰 꽃은 아닙니다.
'하찮은' 것을 지칭하는 '개'까지 붙은 별꽃은
그래서 부정에 긍정을 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크지만 하찮은 별꽃인지?
하찮은 별꽃이지만 크다는 것인지?
전자와 후자는 그 느낌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큰개별꽃>
쌍떡잎식물 중심자목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학 명 : Pseudostellaria palibiniana (Takeda) Ohwi
원산지 : 한국
분포지 : 한국, 일본, 중국
서식지 : 산지 숲속 나무 밑, 약간 습한 응달
꽃 말 : 은하수
이 명 : 민개별꽃, 생약명 태자삼, 동삼(童參)
효 용 : 어린 줄기와 잎을 식용하며 한방에서는 위장약으로 쓴다.
우리가 일상으로 사용하는 말들도
큰개별꽃에 붙여진 이름처럼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그런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때로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는데도
마치 그런 의도로 한 것처럼 오해를 사기도 하지요.
그것이 면전에서 말로 행하여지는 경우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어감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추정을 할 수 있지만
그 마저도 의도를 가지고 말할 경우에는
알아채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얼굴 빤히 쳐다보면서
뱃속에 검을 감추고 눈으로는 웃으며 말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에게는 쉽지는 않은 일이지요.
그런만큼 눈을 바라보며 말하는 것은
서로의 진심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그나마 덜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상대방의 표정을 보면서
서로 조심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면서
말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물론 반드시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현실이 아닌 사이버공간에서는
거의 직설적으로
마음에 상처를 주는 글들이 난무합니다.
필터링할 여지도 없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가서 비수처럼 박히지요.
그것이 거꾸로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생각도 없이
말입니다.
그것이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사례들이 자주 노정되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자정의 움직임은 여전히 미약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많은 사람들을
현실을 외면하는 아웃사이더가 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웃사이더가 많은 세상은
온전히 내 것은 될 수 없습니다.
현실에 적극적으로 앙가제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임에도
그 본질이 외면 받는 사회는 죽은 사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찮은 큰개별꽃을 보며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