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행차/국내명소

광화문

가루라 2012. 2. 7. 00:15

광화문 야경

  

조선은 한양을 도읍으로 삼은 후 태조4년 1395년 경복궁의 기본구조를 갖춘 다음

1399년 동, 서, 남쪽 둘레에 궁성을 쌓고 동쪽에 건춘문, 서쪽에 영추문 그리고 남쪽에 정문인 광화문을 세웠다.

그 이후 북쪽에도 궁장을 쌓고 북문인 신무문을 만들어 거의 네모난 형태의 궁성을 완성하였다.

동쪽의 건춘문은 봄이 시작된다는 뜻으로 세자, 동궁 각사에 일하던 신하들이 출입하였고

서쪽 영추문은 가을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주로 문무백관이 출입하는데 이용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처음에는 사정문(四政門)으로 불렀으나 1425년(세종 7) 집현전에서 광화문으로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65년(고종 2)에 재건했으나

1927년 일제강점기 왜인들에 의해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축소 이전되었다.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8년 석축(石築) 일부를 수리하고 문루를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중건하였던 것을

조선총독부 건물인 국립중앙박물관을 철거하면서 위치도 원래의 자리로 옮기고 

석축기단 위에 3개의 무지개문[홍예문 : 虹霓門]을 만들고, 그 위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으로 된 문루를 두었다.

세개의 홍예문중 중앙은 왕이, 좌우의 작은 홍예문으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원래 광화문 좌우 궁성 끝에는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두었으나

서십자각은 역시 일제 강점기 왜인들에 의해 철거되어 흔적조차 없다.

경복궁과 각 문의 지붕마루에 취두, 용두, 잡상 등을 놓아

잡기를 막고 외침으로부터 왕궁도 보전하고자한 조선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궁성은 훼손되고 지금은 주인조차 없는 왕궁 경복궁

내력없는 수문장 교대식만 허허롭다.

 

<수난의 역사의 상징 광화문 현판 2011년 10월> 

<전방 좌측방에서 담은 광화문>

<좌측 궁장과 함께 담은 광화문>

<동쪽 출입문 협생문 밖에서 궁장과 흥례문 회랑의 처마와 광화문 안쪽을 담았다.>

<광화문 안쪽 서쪽 용성문 궁장과 광화문>

<구척장신의 수문장 ?>

 

<교대식 장면>

<중앙 홍예문에서 천장의 단청과 흥례문을 담음>

<서쪽 담장에서 담은 야경>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기전 2003년 10월 광화문의 모습

지금은 흥례문과 연결된 궁장을 동서쪽으로 연결하여 아래 첫번째, 두번째 사진은 담기 어렵다.

01

02

03

안쪽 서쪽 모습 

안쪽 동쪽 모습 

양쪽 궁성을 연결하기전

안쪽 정면 

2003년도 10월 광화문의 다른 모습들

01

02

03

04

05

흥례문 회랑끝에서 

홍예문에서 담은

광화문광장 

홍예문 천장 단청 

 흥례문을 보고

안쪽 야경 

 <외딴 섬으로 남아 있는 동십자각>

 <수리중인 광화문 2008년 11월 인왕산에서>

흥례문 전면의 궁장과 용성문, 협생문, 광화문을 복원하는 공사중이다.

<완공된 경복궁 2011년 10월 안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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