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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저녁 -송해월-

가루라 2014. 3. 18. 01:06

 

 

<어느 겨울저녁>   - 송해월 -

 

 

 

 

해 저무는 겨울 강에

먼- 산 그림자 와서 드러누우면

강을 건넌 어둠이

유년(幼年)의 어느 저녁

잠결에 들었던 고단한 내 아버지의

물이 새는 검은 장화 발소리를 내며

저벅 저벅 신 밑쟁이를 돌아온다

 

마른 풀들이 발 끝에 차이는 소리가

바람에 묻혀 갈 무렵

참선하는 자에게 던져진 화두처럼

생소한 물음 하나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가

언제까지나 미궁(迷宮)이다

 

내 몸에 스민 한기(寒氣)가

따슨 기억들을 지워 가고

동네에 켜진 명료(明瞭)한 불빛이

바람에 흔들거리면

집집마다 종종 걸음으로 식구(食口)들이 돌아오고

너는 나직이 말한다

사는 거 별거 아니라고

저들이 네게로 돌아오는 것처럼

너 또한 그들에게 돌아가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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