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월미도 유람선 갈매기들

가루라 2014. 3. 26. 03:33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이랑 월미도에서 점심을 먹고 유람선을 탔습니다.

영종도에 인천공항을 한참 만들고 있을 때

회사 직원들이 나가 있는 프로젝트 현장을 가느라 영종도가는 카페리를 몇번 타봤지만

인천에서 연안 유람선을 타는 건 아마도 처음이었지 싶습니다.

공연이 있다는 유람선 1층 안의 난장은 애시당초 제 취향이 아닌터라

홀로 뱃전에 서서 시끄러운 고양이소리를 내며 쫓아오는 괭이갈매기들을 담습니다.

뱃전에는 새우깡을 사들고 갈매기에게 던져주는 사람들로 그득합니다.

당초 계획은 작약도에 내려 한바퀴 돌아보고 오려 했으나

무슨 일인지 작약도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네요.

그래서 선택한 해양관광유람선은 월미도를 출발 작약도 앞 해상, 영종대교 주탑 밑을 지나

굴포천 아라뱃길 서해갑문 앞에서 선수를 돌려 다시 월미도로 향하는

1시간 30분 정도의 해상관광으로 운영됩니다.

말이 해상관광이지 볼만한거라고는 영종대교 주탑뿐이고

선내에서 공연되는 러시아계 무희의 춤 관람은

해상관광이라는 허울아래 운영되는 캬바레나 다름없네요.

그래서 관광객 대부분은 뱃전에서 갈매기에게 새우깡이나 던져주는 해상관광에

이용료가 15,000원이면 적은 금액은 아니죠.

날씨는 쾌청했지만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는 온통 뿌옇습니다.

그래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저 유람선에 오른다면 그런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체 주변에는 벌써 뭔가를 기다리는 갈매기들로 가득합니다.

배 주변 해상에 내려앉아 체력을 비축하는 놈들

벌써부터 무언가를 달라고 소리지르며 뱃전을 스치듯 날으는 놈들

모두가 고기잡는 것은 포기하고 새우깡을 쫓는 본성을 잃은 갈매기들입니다.

결국은 인간의 간섭으로 인해 본성을 잃은게지요.

사실 자연계에 그런 증거들이 널려있는데 이게 무슨 새삼스러운 것이냐겠지만 

더 높이 날으거나 급강하비행술, 급회전비법 등의 체득에 목말라했던

조나단 리빙스턴 씨걸(Jonathan Livingston Seagull)을 기억하는 제게는

더 이상 물고기를 잡지 않는 갈매기들이 커다란 비극으로만 보입니다.

갈매기의 꿈을 빼앗아 버린 인간들

더 이상 높이 날지도 스스로 물고기를 잡지도 않고

그저 인간이 던져주는 새우깡에 안주하게 만든 인간들

그것은 갈매기와 인간간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세상에서도 빗대어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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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종도행 카페리

해상에 대기중인 갈매기들 

월미도 방파제의 낚시꾼 

배가 출발하자마자 해상에 내려 앉아있던 갈매기들까지 한꺼번에 날아 올라

유람선을 뒤따르기 시작합니다.

동물중에는 사람보다 최대 8배나 멀리 볼 수 있는 매가 시력이 가장 좋다면

수 킬로미터의 높이에서 지상의 사냥감을 포착하는 독수리도 그에 버금간다고 합니다.

둘 다 공중에서 정지비행(hovering)을 하며 목표물을 탐지하지만

세번째로 시력이 좋다는 갈매기는 빠른 속도로 날으면서도

4km 전방의 물체를 금방 식별한다고 합니다.

보통은 수면위를 낮게 날으다가 사냥감을 발견하면 잠깐의 호버링을 하고는

수면으로 급강하해서 물고기를 잡아내는게 갈매기의 사냥술입니다. 

그 정도의 시력을 가진 놈들이 고작 몇미터 혹은 몇십미터 상공 또는 옆에서

선상의 사람들 손에 들려있는 새우깡을 나꿔채가거나

공중에 던져진 새우깡을 가뿐히 받아 먹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죠.

배를 따라 좌우로 날으면서 갈매기들의 시선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있는 새우깡을 향하고 있습니다.     

기회를 엿보다 대범하게 손에 들고 있는 새우깡을 넘보는 갈매기도 있고

공중에 던져진 새우깡을 잽싸게 나꿔채가는 녀석도 있습니다.

거의 사람의 손에서 빼앗다시피 달려들기도 하는군요.

새우깡을 손 아랫쪽으로 내렸음에도 그악스럽게 쫓아가는 괭이갈매기들의 시선이 보이시죠.

심지어는 다른 개체가 이미 입에 문 새우깡을 약탈하려는 갈매기계의 강도도 있습니다. 

날으면서 던져진 새우깡을 받아 먹거나 손에서 채가는 갈매기는

그래도 날으는 기술만큼은 인정해 줄만 합니다.

그러나 낙전수입에 의존하는 날지 않는 갈매기라니....

이 녀석들은 숫제 해상에 떨어진 새우깡을 주어 먹을뿐이니 제 본분을 망각한게지요.

 

제대로 날으는 갈매기들의 멋진 본 모습을 보여드릴까요?

 

 

 

 

 

 

날개 깃 하나하나에서 전신까지 이것이 바로 위대한 갈매기의 이미지입니다.

 

40여년전 고3 때 장중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의 팝음악

"Be(영화 갈매기의 꿈 주제곡)"를 들으며

리차드 바크(Richard Bach)의 소설 "갈매기의 꿈(원제:Jonathan Livingston Seagull)을 밤새워 읽을 때

뜻 모를 자유와 꿈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으로 뛰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습니다.

여느 갈매기들처럼 선창에서 흘러나오는 쓰레기더미를 뒤지거나

뱃전에서 버려지는 썩은 생선 부스러기를 놓고 싸우는 갈매기는 되지 않으리라 했었습니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처럼 먹는 것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멀리 볼 수 있게 가장 높이 날으리라했었죠.

 

그러나 그로부터 사십여년이 흐른 지금

높이 날으는 꿈을 꾸며 몇번이고 읽었던 갈매기의 꿈은

앨범 속의 흐릿하고 빛바랜 그 시절 사진처럼 아련할 뿐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나 쫓던 월미도의 괭이갈매기들처럼 살았었나 봅니다.

드센 바람 속에서도 뱃전에서 던져주는 새우깡을 쫓아 어지러히 날으는 갈매기들 속에서

지나온 사십년의 내 삶의 잔해를 발견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운염도방향 영종대교 주텁 

대다뮬도방향 영종대교 주탑 

유람선에서 찾아보는 또다른 내 삶의 편린들

인천부두 연안의 발전소와 공장굴뚝과 컨테이너기지를 보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던 산업현장의 30년을 기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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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발전소 

 산업단지와 컨테이너

월미도 유원지 

해상 도크 

그래도 그날은 저의 자랑스러웠던 모습을 기억해 주는 친구가 옆에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일식집을 경영하며 주방에서 칼질을 하다가

9시 TV뉴스에 나오는 저의 인터뷰방송을 보고 자신의 친구라고 환호하여

그날 가게에 있었던 손님들에게 술을 공짜로 제공했다는 친구

자신의 아들에게 아빠는 비록 횟집 주방에서 칼질을 하고 있어도

초딩 친구 중에 이런 친구도 있으니 공부하라고 아들을 다그쳤다는 친구

그 친구덕에 하선해서 들어갔던 술집의 술이 그리 쓰지는 않았었나 봅니다.

인생이란게 항상 많은 갈매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귀항하는

만선과 같을 수만은 없는게 아닐까요?

때로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출어비용을 걱정해야 하는 쓸쓸한 귀항도 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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