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벽난로에 대한 단상

가루라 2014. 3. 31. 01:36

탁탁 이따끔 장작불 튀는 소리, 부드럽게 흔들거리는 빨간 불꽃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벽난로가 나오는 장면을 볼 때면

나도 나중에 혹시 집을 지으면 벽난로를 꼭 설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10여년 전 성냥갑 속에 구르는 성냥개비처럼 떠도는 말들이 싫고

이웃간에 생기는 벌집처럼 불쾌한 소음분쟁과

다중이 거주하는 시설에 어울리지 않은 일부 무지몽매하고 몰염치한 인간들이 싫어서

아파트생활을 접기로 했었습니다.

어린시절에 살았던 울안의 집처럼 마당도 있고 앞뒤가 탁트인 주택을 찾아보다가

재수좋게도 지금 사는 집을 만났습니다.

비교적 높은 지대에서 보이는 탁트인 전망도 전망이지만

거실 한쪽 모서리에 자리잡은 영화 속에서나 꿈꾸던 로망이었던 벽난로에 반해서

집을 샀다고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겨울철이면 장작이 다타고 난 군불 속에 고구마를 박아두고

흔들의자에 앉아 뜨게질하는 집사람과 책을 읽는 나의 노후를 그려보며....

 

허허, 이래서 꿈꾸던 이상은 현실과 달리 꿈으로 남아야 하나 봅니다.

물론 처음에는 참나무 장작을 사다가 불을 때기도 했었고

때로는 의정부 외곽 어딘가에 사는 후배의 부친께서 만들어 주신 참나무 장작을 가져오기도 했었네요.

초기에는 참 열심히 불을 피우고 고구마도 구어먹고 했습니다.

회사에서 늦게까지 야근을 하거나 술을 한잔 하고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벽난로 속에 장작 몇개를 넣고 마지막 불꽃이 사그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앉아 아무 생각없이 불꽃만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70년대 가수 박인희의 노래 모닥불처럼

장작불은 마음을 착 가라앉게 만드는 마력이 있나 봅니다.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허허로운 상념들은 다타서 사그라져 버리니 말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실내공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매립형구조 탓에

장작불이 타는 화덕을 열어 놓고 등을 벽난로 입구로 향하고나 앉아 있어야 등이 따뜻할 뿐

멀리 떨어져 있으면 온기가 전혀 전달이 되지 않는데도

태워버려야 할 상념들이 많았던 처음에는 참 많이 불을 땠습니다.

 

이 집을 지을 당시에는 이런 구조의 매립형 벽난로가 유행했었나 봅니다.

불이 한참 탈 때는 벽난로 내부온도가 섭씨 1,000도까지 올라간다니

연통으로 화기도 잘 빠져 나가고 화재로부터도 안전한 방식이 우선이었겠죠.

이런 매립형구조는 벽난로 바로 앞만 따뜻해서 난방효과보다는 거의 장식용에 가깝습니다. 

 

요즈음 특히 전원주택 건축을 꿈꾸는 분들도

저처럼 그 로망에 휩싸여 벽난로들을 설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벽난로를 장식용뿐만 아니라 주택난방의 보조재로 설치하는 것을 검토하는데

요즈음 판매되는 벽난로는 열효율, 발열량, 버닝타임 등을 고려하여

매립형보다는 외부돌출형이 인기가 있나봅니다.

잡지에도 디자인이 다양한 주철제 외부 돌출형 벽난로들의 사진이 실려 있네요.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서양의 주택처럼 거실을 넓게 뽑을 수 없는 우리의 주거환경에는

벽난로는 '개 발의 편자'격으로 내몰릴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귀농 귀촌의 경우는 다를 수도 있지만 땔감을 직접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매번 비싼 장작을 사서 땔 수도 없고....

거기다가 아무래도 나무 부스러기나 타고 날린 재 등으로 벽난로 주변도 지저분하고

연통으로 빠져 나가는 잿가루와 연기로 인해 이웃과 불편한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고

여러가지로 도시생활에는 맞지 않는 장신구로 밀려 날 수 밖에 없네요. 

설치하기 전에는 로망이었던 값 비싼 벽난로가

정작 설치 후에는 불필요한 벽면 장식용 입체 액자처럼 취급되어 버린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겠지요.

 

그러나 벽난로가 있다보니 간혹 정말 간혹 가다

잊고 있었던 벽난로의 불꽃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불을 지피시던 고향집 아궁이가 생각날 때

실내공기가 오히려 더 추운 이른 봄, 창밖에는 추적 추적 봄비 내릴 때

 

그럴 때면 한쪽에 아껴 쌓아두었던 장작 몇개를 넣고 불꽃을 태웁니다.

닥터 지바고던가 하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꿈꾸며....

고향집 아궁이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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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난로 불꽃 

벽난로 불꽃 

유리창엔 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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