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아빠가 해주는 결혼식 축사

가루라 2014. 2. 23. 23:38

28년간 곱게 키웠던 딸내미가 시집을 가겠답니다.

스물다섯을 훌쩍 넘겼으니 옛날 기준으로는 과년한 나이이긴 하지만

서른을 넘겨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인 요즈음 세태에 비추어 보면 무척 빠른 거지요.

 

사람들의 심정이 다 그런 걸까요.

옛날과 다르게 하나 둘 밖에 두지않은 자식으로 인해

자식을 온전히 키웠다는 생각으로 일찍 시집 보내기에는 뭐 좀 아깝다는 생각 ?

 

그래도 주례를 별도로 모셔 자신들을 자세히 알지도 못할 그분에게 주례사를 듣느니

아빠가 축사를 해주시는게 어떻겠느냐는 딸아이의 부탁으로 인해

웨딩드레스를 입은 천사같은 딸아이를 눈물없이 떠나 보낼 수 있었지 싶습니다.

 

아무리 세태가 달라도 또 많은 덕담을 해주어야겠지만

지지부진 길게 할 수도 없고 사돈댁의 눈치도 보이고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네요.

현직에 있을 때 사내외 강의도 많이 해보고

행사 사회도 도맡다시피 했지만 여간 떨리는게 아닙니다.

너무 짧고 코믹하게 하면 경망스럽다 할 것이고

너무 길고 딱딱하면 고답적이다 할 것 같고....

딸을 잘 모르는 사돈댁 친인척들의 평가가 아빠의 축사 하나로 좌우될 수 도 있는 상황

 

몇날 몇일을 고민한 끝에

적어도 꼭 당부하고 싶은 세가지 이야기를 4분 정도의 축사에 담아 보았습니다.  

 

 

<아빠가 해주는 결혼식 축사>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

저는 신부 ○○○의 아버지 ◇◇◇입니다.

이렇게 청명한 가을날, 공사가 다망하심에도 불구하고 이 혼인을 축하해주시기 위하여 참석하신

양가의 일가 친지 여러분 그리고 많은 하객 여러분께 양가를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같이 기쁜날, 하객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뜻을 직접 표하고

아울러 신랑 신부에게도 양가의 뜻을 모아 부모로써 축복과 당부의 말을 전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교제기간을 거쳐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어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로

각각 아들, 딸의 역할에 더하여 사위요 남편이자, 며느리요 아내로써의 책임과 의무를 다 하겠다는 각오와 신뢰로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오늘 혼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두 사람이 앞으로 부부로써 백년해로를 함에 있어서 명심하여야 할 몇 마디 이야기를 해주고자 합니다.

 

그것은 부나비의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나비는 제 한 몸 타는 것도 모르고 밝은 불빛만을 지향하는 습성을 가진 불나방과의 곤충인데요,

이 부나비처럼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항상 밝은 것을 지향하는 부부가 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를 꼭 명심하여야 합니다.

 

부나비의 첫글자 "부"는 부부가 중심이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자란 두 사람이 부부가 된 이상 매사에 있어서 항상 부부 공통의 관점에서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방안을 찾으려 노력해야 밝은 가정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부나비의 두번째 글자 "나"는 나를 앞세우기 전에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부모님을 모심에 있어서는 내가 먼저가 아닌 부모님이, 부부간에 있어서는 내가 아닌 상대방이,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내가 아닌 이웃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나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모든 일에 갈등과 미움이 일지 않고

항상 밝은 얼굴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부나비의 마지막 글자 "비"는 비밀을 만들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부부 사이에 비밀을 만드는 일이 생기게 되면 그 비밀에 발목 잡혀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불씨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누구보다도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부부가 된 오늘은 너무도 기쁜 날입니다.

오늘 참석해주신 많은 하객들의 신뢰와 축복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여

두 사람은 양가와 사회로부터 사랑받는 명품부부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처럼 훌륭하게 키우신 아들을 사위로 맞을 수 있게 해주신

사돈어른 내외분의 따뜻한 배려와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아들처럼 사랑하겠습니다.

아울러 부족함이 많은 저희 딸을 며느리로 맞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딸 같은 며느리로써 예뻐해 주시고 잘 이끌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두 사람의 새 출발을 축복해 주시기 위해 끝까지 함께 해주신 양가의 일가친지 여러분

그리고 많은 하객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또한 이 자리에 참석하신 신랑 신부의 친구 여러분,

여러분들도 빠른 시간 내에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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