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인왕산 해맞이

가루라 2014. 1. 1. 15:11

2014 甲午年 푸른 말이 달리는 형상으로 달려올 해를 맞으러 인왕산으로 갑니다.

매년 집 근처 인왕산에서 신년 해맞이를 하지만

해가 갈수록 해맞이를 위한 산객들이 늘어서 인왕산 정상은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입니다.

올해도 정상에 가기를 포기하고 기차바위에서 해를 맞이하려 합니다.

작년 딸애를 시집보낸 후로 제가 외로워 보였던지

올해는 아들네미가 선뜻 해맞이에 동행하겠다고 합니다.

덩치 큰 녀석이 뒤에서 렌턴을 비추며 지켜주니 어두운 등산길이 훨씬 편하네요.

이럴 땐 아드ㅡㄹ 아들 하나 봅니다.

 

2014년 새해 아침 일출로 만든 연하장으로 인사 먼저 올립니다. 

아직 먼동이 뿌옇기만 한데도 기차바위 능선까지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 찹니다.

지난번 내렸던 눈은 여전히 능선을 하얗게 덮고 있습니다.

평소대로 기차바위 능선에 연결된 밧줄까지 포함하여 앵글을 잡고 삼각대를 펼칩니다.

맙소사 @..@ 또다시 무대뽀로 앞을 가로막는 훼방꾼을 만납니다.

뒤늦게 왔으면 다른 사람이 카메라를 거치해 놓을 걸 보고 방향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리를 잡으면 좋으련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건 전혀 개의치도 않는 부류, 사진 찍으러 다니면 만나는 정말 젤 싫은 무뢰한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새해가 시작되는 좋은 날.

제가 평소 애용하던 자리를 내어주고 옆으로 비켜서 다시 자세를 잡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인식조차 없으니 이럴 때도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한마디 없습니다. 

암튼 순간적인 불쾌한 감정을 접고 붉게 달아 오르는 동쪽을 응시합니다.

박두진님의 시 <해>를 변형하여 1980년 MBC대학가요제에서 마그마가 불렀던 <해야>가 떠오릅니다.

어둠 속에 묻혀있는 고운 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

어둠이 걷히고 햇볕이 번지면 깃을 치리라

마알간 해야 네가 웃음지면 홀로라도 나는 좋아라

어둠 속에 묻혀있는 고운 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

해야 떠라 해야 떠라

말갛게 해야 솟아라

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애띤 얼굴 솟아라

 

항상 그렇듯 뜨는 해는 불끈 솟아 오릅니다.

머리 끝이 보이는가 싶으면 어느새 빨갛게 타는 온 몸을 드러냅니다. 

오늘은 도심이 온통 중국발 미세먼지에 뿌옇게 갇혀있습니다.

시야가 깨끗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구름 한점 없어서

벌겋게 달아오른 2014년 새아침 첫 해를 온 몸으로 안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물론 작년에 시집간 딸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봅니다.   

다들 그런 마음으로 휴대폰을 꺼내들고 새해 일출을 담는거겠죠.

훌쩍 떠오른 햇빛 아래 서울 도심은 온통 뿌옇게 보입니다.

마치 누렇게 퇴색된 기름종이에 그려진 동양화 같기도 하고 뿌연 물속 풍경 같기도 합니다. 

햇빛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남산방향은 온통 잿빛입니다.

언제 사람이 꽉차있었냐는듯 해가 완전히 뜨자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 나갑니다.

인왕산 정상과 서쪽 사면은 아직도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상암동쪽 방향은 아직 채 깨어나지 않은 깊은 새벽에 잠겨 있습니다. 

점점 거세어 지는 바람과 코를 자극하는 미세먼지의 매케한 냄새로 서들러 하산합니다.

2014년에는 정치적인 구호를 떠나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갈등구도가 조속히 해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2014년 대한민국이 가야할 방향은 어디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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