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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기(俛仰亭記)

가루라 2014. 6. 3. 01:04

십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나 한 칸, 달 한 칸, 그리고 바람 한 칸의 마음

양반들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로움을 자연가에 담은 면앙정을

봄비 속에 찾았습니다.

 선산의 아버님 산소에 들러 담양에 모신 어머님을 뵈러 가는 길

자투리 시간을 내어 들렀던 면앙정.

유쾌한 여행길이 아닌 탓에 별다른 대화도 없었던 데다가

비마져 내려 차안의 공기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던 날이었습니다.

까뮈는 뫼르소를 통해 햇빛이 너무 뜨거워 살인을 하는 상황을 설정했지만

이렇게 무거운 공기는 꼭 무슨 일을 저질러야 걷힐 것처럼

가슴을 짓누르고만 있었습니다.

가슴에 무겁게 얹혀진 그것을 떨쳐내어야만 할 뭔가 다른 소재꺼리를 찾아

집사람과 함께 면앙정에 오른 것입니다. 

 호남 가사문학의 산실이던 송강정, 식영정, 소쇄원은 여러차례 가보았으나

면앙정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한학이나 시가문학에 특별히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지만

고교시절에 배웠던

아니 그래도 면앙정 송순이라는 이름이

어린 시절 옛 기억의 단초가 될까해서 면앙정을 찾았던 것입니다.

송강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탓에

초교시절 송강정으로 자주 소풍을 갔었지만

한번인가 어머님께서 송강정까지 따라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60년대의 초등학교 소풍은 관내마을 잔칫날이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소풍장소에 따라오셨는데

볏짚으로 말풍선처럼 만든 길다란 12개들이 계란꾸러미를 들고 오시거나

조금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은 하얀 무명 손수건에 계란 두세개씩을 꽁꽁 싸올 정도로

계란조차도 귀한 선물이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계란 외에도 볼때기가 불룩 튀어나올 정도로 큰 눈깔사탕(당시에는 아메다마라라 불렀다)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소풍날이었으니

오륙십대에게는 어찌 소풍날의 추억이 그립지 않겠는가?

내게는 어머니와 그 소풍을 연결지어주는 것이 누정(樓亭)이었습니다.

옛 선비들이 머물렀던 곳은 거의 분위기가 비슷한가 봅니다.

면앙정도 송강정, 식영정과 비슷한 높이에서 사위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배산임수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마도 인지자 요산요수(仁知者 樂山樂水)의 풍류를 대변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평민들이 농사를 짓다가 더위를 피해 쉬거나 머무르는 정자인

평지에 지어진 모정(茅亭) 또는 시정, 유산각 등과 달리

선비나 양반들이 노비들의 수발을 받으며 풍류를 즐기던 누정(樓亭)은

대게 약간 높은 산자락이나 벼랑 위에서

강, 바다, 들판 등을 내려다 보는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송순이 중앙의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학을 가르치며 풍류를 즐겼던 곳인

면앙정(俛仰亭)은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의 나지막한 제월봉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약간의 경사진 계단을 힘 들여 오르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 씌워진 정자가 고즈넉하게 서있습니다.

전후 좌우는 마루로 개방되어 있고 가운데에 자그마한 방이 하나있는 구조입니다.

송강정이나 식영정보다는 더 단촐한 느낌입니다.

면앙정 편액이 걸려있는 뒤편으로 돌아가면

너른 평야 건너편에 늘어 서있는 한재산, 병풍산과 추월산이 면앙정의 기개를 느끼게 합니다.

서까래에는 많은 제자, 후배들이 헌사한 글을 각자한 편액들이 걸려 있는데

비내리는 어두운 날이어서 생략하고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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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좌측에서 

면앙정 실 

 뒷면 좌측에서

뒷면 우측에서 

면앙정 우측 끝자락에서 추월산방향을 사진으로 담아 봅니다.

당시와 달리 나무들이 많이 자라서 시계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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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면에서 본 담양 

제자들이 둘러멨다는 남여 

200년된 보호수 참나무 

전면 좌측에는 면앙정가비가 세워져있습니다.

너럭 바위 위에

소나무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앉혔으니

구름을 탄 청학이

천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리고 있는듯....

면앙정에 대한 자부심이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요.

俛有地 仰有天(굽어보면 땅이오 우러러보면 하늘이라)

亭其中 興浩然(그 가운데 정자를 지으니 흥취가 호연하다)

招風月 揖山川(바람과 달을 불러들이고 산천을 끌여들여)

扶藜杖 送百年(청려장 지팡이를 짚고 백년을 보내네)

 

면앙정 3언가는 무위자연하는 송순의 마음을 담아내었지만

어디 세상이 그리 녹록하던가?

하늘을 우러러 땅을 굽어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으로 살기가....

부모, 자식으로써의 도리를 다하고

백성으로써의 도리를 다하고

친구로써, 선배로써

인간으로써 다해야 할 도리가 많은 세상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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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면앙정 

면앙정 오르는 길 

면앙정 표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