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행차/국내명소

해무 속의 무의도에 빠지다.

가루라 2014. 4. 22. 01:24

그 섬에 가고 싶다.

임철우의 소설 제목이 아니더라도

섬이 주는 이미지와 간다는 행위는 내게도 큰 의미를 지닌다.

지친 도시생활 또는 힘겹거나 무기력, 무료한 상황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은

어딘가를 가고 싶다고 한다.

그것이 섬일 수도, 바다일 수도 또는 산사일 수도 있지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현실과 멀리 떨어져 유리된 섬에 가면

왠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고교시절 부모님께 거짓말하고 봉사활동을 떠났던 나의 거금도행이나

여름이면 선유도를 찾아 떠나던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것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또는 학업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작년 가입해있던 송창식 팬카페에서

가인 송창식이 힘들고 지칠 때면 찾았다는 무의도행을 추진했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갈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까웠었다.

사실 걍 혼자 떠나도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어디 현실이 늘 내 생각대로만 되던 것인가?

 

무의도(舞衣島),

섬의 모양이 장군복을 입고 춤추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무의도는 영종도를 거쳐 잠진도까지 차로 갔다가

잠진선착장에서 바로 건너편에 빤히 보이는 섬을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한다.

전 직장동료들과 함께 하는 산악회에서 가기로한 무의도행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왠지 혼자서 섬을 찾는다는 건 너무도 외로울 것 같고

은퇴 후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행동반경이 줄어들고 있는 탓이기도 했다.

게다가 현실 속에서 내려 놓아야 할 뭔가가 머리 속을 짓누르고 있는 요즈음

다른 것에 집중해서 그것을 잊을만한 뭔가의 꺼리가 필요했다.

아마도 내게 그 섬은 내 주위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수요일 청계산 등산, 목요일 남부지방까지 장거리 운전, 그리고 금요일 상경

몸은 지칠대로 지쳤지만 의식은 오히려 점점 더 또렸해져 갈 때

의식까지도 돌려 놓아야할 다른 대체제로 토요일 그 섬을 가야만 했다.

 

그렇게 출발한 무의도행

날씨는 흐리고 비마져 예보되었다.

당초 계획은 무의도 큰무리선착장에서 버스를 타고 광명선착장쪽으로 이동하여 호룡곡산, 국사봉을 거쳐

출발지로 되돌아 나오는 꽤 먼 계획이었지만

큰무리선착장에서 바로 산을 타고 국사봉, 호룡곡산을 찍고 소의무의도를 들렀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오자는

멤버들의 현지에서의 의견조정으로 아래 사진의 선착장 끝에 보이는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무의도 입도 

무의도 선착장에서 잠진도 쪽

비교적 젊은 사람들만 갔더라면 아마도 그렇게 무의도의 허리를 가로질러

당초 계획대로 모두 돌아보고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칠순이 훌쩍 넘은 회장님과 함께 출발한 산행은

출발부터 짙은 해무와 비구름에 덮여 있었다.

회장님의 의욕은 벌써 소무의도를 찍고

영화촬영 장소인 실미도와 하나개해수욕장까지 돌아오는데

간간히 얼굴을 훑고 흘러내리는 빗방울 속에 발걸음은 무거워만 보인다.

산행 시작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는 당산나무에 걸린 빛바랜 천들이

낮은 산이지만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녹록치 않은 길임을 예고한다.

키작은 관목 숲에 가려 보일듯 말듯하던 실미도

당산을 지나 조금 내려온 조망포인트에서 손에 잡힐듯 눈 앞에 있다.

북파공작원을 양성하던 비밀의 섬

영문도 모른채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이끌려 들어왔다가

결국은 혹독한 훈련의 성과를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무장공비로 덧씌워져 불귀의 객이 되었던 실미도요원들의 한이 묻힌 섬

군에 갔다 온 사람들이면 그 느낌을 더욱 더 공감하였을 실미도가

바로 저기

희뿌연 해무 속에 숨 죽이고 있다.

그것은 마음 속에 박힌 못 하나.

누구나 마음 속에 박힌 못 한둘 쯤은 가지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든 타인에 의해서든 마음 한구석을 모질게 몰아세우는 일

그것이 겉으로 드러날 때 그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실미도를 바라보는 실미도사건 희생자 유가족은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설사 위 사진처럼 물이 빠지면 실미도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어서

일반인들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여름 휴양지임에도 불구하고....

실미도 가는 길(실미고개) 

실미고개 

내리막으로 이어지던 길은 실미고개에 이르러 다시 급격하게 오르막으로 바뀐다.

간신히 따라오셨던 팔순을 바라보는 회장님의 그 순간 마음 속은 어떠했을까?

자신으로 인해 지체되는 산행속도와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의 자신

현직에 계실 때는 엄청난 카리스마로 직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지만

이제 나이듦 앞에 어쩔 수 없는 노구를 인식해야 하는 현실

그것이 어쩔 수 없이 요양원행을 선택하신 어머님이나

앞으로 몇년 후면 내가 선택해야 할 내 육신의 미래일 수도 있다.

개활지인 헬기장을 지나 아직도 국사봉은 저 멀리 있다.

회장님을 모시고 일부가 먼저 내려가고

나머지는 당초 계획대로 호룡곡산까지 갈것인지 한참을 고민 끝에

다함께 국사봉만 찍고 하나개해수욕장으로 내려가 버스로 돌아나오기로 결정한다.

아쉽지만 그래도 참 다행이다.

따로 떼어 놓는게 어쩌면 그 분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일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저 능선 너머가 국사봉인데 시간은 벌써 12시 반이 넘었다.

차를 주차해 놓은 영종도의 횟집에서 점심식사를 하려면 많이 서둘러야 하지만

그래도 준비해온 음식과 과일을 하나하나 꺼내온 탓에 허기질 일은 없다.

마당바위인지 벼락맞은 바위인지 바위위에서 본 실미도 인근 섬과 해안 그리고 하나개해수욕장

해무로 인해 푸르른 바닷빛은 물론 섬의 윤곽조차 희미한 사진이 안타깝다. 

얼마남지 않은 국사봉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국사봉 정상

국사봉 표지석은 전망데크에 자리를 내어주고 전망대 아래에 돌아서 있다.

자신의 자리를 내어 놓은 표지석의 느낌이란 ?

멀리 보이는 큰무리선착장에는 주말을 맞아 무의도를 찾아오고 떠나는 사람과 차들로 분주하다.

줌으로 당겨 담은 천국의계단 촬영 세트장이 있는 하나개해수욕장

간간히 내리는 빗속에도 철이른 해변을 즐기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눈에 뜨인다.

천지사방으로 탁 트인 정상에서 해무로 인해 제한된 시야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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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개해수욕장 

국사봉표지석 

무의도 큰무리선착장 

<실미도와 무의도 해안선>

 뿌연 해무 속에 잠겨 실루엣만 드러나 보이는 잠진도와 영종도 연안의 섬들 

맑은 날과는 또 다른 느낌.

어쩌면 이 느낌이 마음을 더 차분하게 갈아앉게 만들어 줄 수도 있겠다. 

국사봉에 머무는 많은 사람들의 소음과 막걸리 냄새에 등떠밀려 하산을 재촉한다.

하산길에 보는 하나개와 연결되는 무의동의 봄꽃 풍경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골 안의 농장에서 재배하는 매화, 벚꽃, 목련 등 봄꽃들이 온통 고향의 봄처럼 포근하다. 

무의동 

무의동 농장의 벚꽃, 매화, 목련 등 

국사봉에서 하산하여 구름다리를 건너 호룡곡산으로 오르는 길은 계속된다.

<호룡곡산>

시간은 벌써 오후 두시를 훌쩍 넘겼고

먼발치로 호룡곡산을 눈으로 담고 버스에 올라 큰무리선착장으로 돌아온다.
야생화 탐사가 아니었기에 식생대를 단언해서 말할 수는 없으나

등산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많은 제비꽃 군락과 종류들

무의도에는 유난히 제비꽃들이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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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제비꽃 군락 

알록제비꽃 

고깔제비꽃 군락 

예전에 갈 수 없었던 마음에 특별한 기대를 갖고 찾았던 무의도

왠지 그 섬에 가면 마음을 편안히 내려 농을 수 있을 것 같았던 무의도

비록 무리를 이루는 많은 사람들 틈이었다 할지라도

짙은 해무와 조갑지처럼 엎어져 있는 섬들이 늘어선 남해와는 또다른 느낌 속에서

맑은 날 그 섬을 다시 찾을 명분을 만들어 본다.

 해무에 잠긴 섬과 바다

이름모를 섬 

귀항 

해무에 갇힌 배와 바다

큰무리선착장에서 잠진선착장으로 가는 페리를 타러 가는 사람들

다들 그 섬에 무엇을 내려 놓고 무엇을 담아 가는 것일까?

배가 출발하나 싶으면 금방 잠진도 잠진선착장에 닿는다.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임에도 무의도를 찾는 차들이 잠진선착장 도로에 길게 늘어서 있다.

잠진도와 영종도 연결된 도로

인천공항에서 잠진도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있지만

도로 양쪽의 바다를 보며 두 섬을 이어 연결한 도로를 걸어보는 것도 운치가 있는지 

잠진도선착장에서 영종도까지 버스를 타러 걸어 나가는 사람들 

영종도 검잠포 소나무식당 앞에서 담은 잠진도 가는 길

잠진도 허리를 잘라 무의도까지 연륙교 공사가 진행중이다.

연륙교공사가 끝나면 배를 타지 않고도 섬을 다녀 올 수 있겠지만

그래도 섬이 주는 의미는 살아 있을까? 

그 섬에 가고 싶다.

아아 모두 그 섬에 갔지만 아무도 그 섬에 가지 못했다.

그 섬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무의도 가는 길 

무의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