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영화 기생충 촬영지 자하문터널에서

가루라 2020. 3. 19. 00:41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의 광풍이

이렇게까지 길게 그리고 전 세계를 덮을 줄은 몰랐다.

적어도 대구신천지교회의 신도들과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의 집단감염이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기 전까지는

 초기에 잘 잡히는 것 같았던 전염병의 막연한 공포도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영화 시상식에서

봉준호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포함해 4개부문에서 사상 초유의 수상을 하는 장면을 보며

우리 모두가 환호 할 때는

중국에서 그칠 것으로 여겨졌었다.

그 때는 몰랐었다.

 

작년에 영화를 볼 때는

내내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과 머리를 파고드는 불쾌감으로

극장문을 나설 때까지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그 영화를 잊었었다.

촬영 장소가 어디였었는지도 궁금해 하지 않았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 치부를 남에게 보여주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을까?

영화 속 충격적 장면 중의 하나였던

빗 속의 가족 도주 장면이 우리 동네의 자하문터널이었다는 것은

아카데미 수상으로 국내외 온 언론이 떠들고 난 후였다. 

 

아카데미 수상 소식 직후 자하문터널을 찾을 때까지만 해도

코로나19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덜했었다.

저마다 기생충 촬영명소를 찾아다니며 남기는 인증 사진들.

우리나라 최초, 아니 세계 최초로

미국 외에서 만들어진 영화의 아카데미상 수상의 뒷맛을

오래도록 즐길 수 있을 것 같았었다.

돼지수퍼도 가고, 피잣집도 가고, 성북동 박사장네 집앞길도 가고...

 

캠핑을 떠났던 박사장 가족의 폭우로 인한 조기 귀가.

그로 인해 주인없는 집에서 주인행세를 하던

기택과 기정, 기우의 폭우 속 도주 장면.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물에 빠진 생쥐꼴로 도망치던 충격의 계단과 터널이

자하문터널이었다는 여운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모든 일상들이 코로나로 인한 우울한 뉴스에 묻혀

도무지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꽃피는 춘삼월의 화려함도 모두 다 덮혀버렸다.

 

세상 일이란게 참 그렇다.

영화 기생충에 자하문터널이 배경이 될 줄 나도 알았을까?

그 때는 나도 다 계획이 있었던 게지.ㅋㅎ

2009년도에 촬영했던 세검정사거리방향 자하문터널이다.

사실 경복궁역과 세검정사거리를 연결하는 자하문 터널은 쌍굴이다.

기생충의 주인공들이 도망치던 터널은 경복궁역 방향이어서

보행로는 사람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터널이다.

세검정사거리방향의 터널은

십년전쯤 보행자 보호용 안전격벽을 만들어

차도와 분리시켜서 터널의 먼지와 소음을 피해 사람들이 통행을 할 수 있다.

그 보호벽 때문에 이런 느낌이 나지 않아서

굳이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데도

봉준호 감독은 경복궁역 방향의 터널을 영화 속 장면으로 담았을듯 싶다.

 

전 세계를 Pandemic수준으로 덮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만드는 요즈음.

하루 속히 전염병이 소멸되어

모두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