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옛 상사로부터 온 문자메시지 한 줄

가루라 2021. 2. 17. 00:50

#문자메시지

설날 받아본 옛 상사의 #문자 메시지 한 꼭지.

그분을 모신 지가 28년이 지났지만

'근무 때 상처 준 언동이 많았던 것을

항상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문구에

잊고 있었던 그때의 열받았던 상황들이 떠오르며

한편으로는 감동을 받았다.

과장 때부터 차장시절까지 본부장으로 모셨었는데

직위가 전무셨지만

H그룹 내에서 소문난 악당 중의 한 분으로

대리 칭호를 붙이거나

심지어 백상어로 불리기까지 하셨던 분이다.

보고나 결재 한 건으로 30분 이상을 갈구는 것은 예사였고

두 시간까지 붙들고 있었던 적도 빈번했었다.

심지어 모 부장은 부서장 회의시간에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서기를 얼마나 오래 시켰던지

구토를 하기까지 했었다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랬던 분도 회사에서 전화 한 통으로 잘리는 날은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지만.

회사를 떠난 후 3개월만에 홀연히 나타나서

우리 회사의 외주업무 사업을 하시겠다고

한 달 이상을 찾아 오셨었다.

그분과의 좋지 않았던 기억에 다들 외면했고

그분이 그룹사에서 데려와 따로 총애하셨던 직원마저

그분을 외면했을 때도

늘 내자리에 오시면 커피 한잔을 대접해드리고

당신께서 회사를 만드시는 일까지 도와 드렸었다.

난 내 스스로 내게 어떤 악연의 인간관계였어도

끝까지 소중이 여겨야 한다는 모토로

현직에 계실 때나 마찬가지로 대했었던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굴욕을 주었던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거나

굴욕감으로부터 스스로가 자유로워지는

나만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렇게 H그룹에서 소문난 악당 상사

몇 분을 모시고 나니

주변에서는 어떻게 견뎠느냐 하지만

내게 멘토 같은 분들도 몇 분 만났으니

세상살이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그분께서 계열사의 어느 사업본부장으로

다시 복귀하셔서 귀임 인사차 전화하셨다며

내게 식사를 하자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그분의 속내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었다.

우리 아이들 결혼식에

사모님과 같이 식장을 직접 찾아주셨을 때도

그분을 알았던 동료들은 다들 놀랐었지만

퇴임하시고 난 후에야

뒤늦게 나를 통해서 당신을 다시 본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매년 설날과 추석 때면

연하장을 만들어 카톡이나 문자로 보내드리고 있다.

매번 그냥 일상적인 답장을 주셨지만

올 설날처럼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신 적은 없었다.

나이 팔십이 넘으신 분이

열 살 이상 차이나는 부하직원이었던 내게

그런 사과의 문자를 써서 보내시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직장내 갑질이나 학폭 등

요즈음 사회에 회자되는 이슈탓만은 아닐 것이다.

설 연휴 끝 해 질 녘 산에 올랐다가

문득 나는 내 부하직원이었거나 동료였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혹시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말을 했었다면

이 자리를 빌어 나도 그들에게 사과하고 싶어지는

설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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