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복수초키우기

가루라 2021. 3. 17. 01:09

#복수초

마당에서 복수초를 키우기 시작한 지 12년째

재작년 봄 꽃을 거의 30송이 정도 피운

거대한 개체로 성장했으나

안타깝게도 그 해 겨울 자취를 감춰 버렸다.

지상의 존재들이 없는 맨땅에

길냥이가 배변을 하고

그 흔적을 덮느라 땅을 파는 과정에서

뿌리째 뽑혀 죽어버린 것이다.

그 사이 종자가 발아하여 자란 개체가

올해 꽃을 피웠다.

이 아이도 서서히 수세를 키워가기 시작하면

수년 내에 그렇게 큰 개체로 자랄 것이다.

그 큰 개체가 사라지고 난 후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 새로운 싹들이 엄청 많이 돋았다.

멸종될 것 같다는 위기를

그동안 땅에 떨어진 종자들이 느꼈다는 듯

우후죽순 격으로 수많은 개체들이

새롭게 얼굴을 내밀었다.

그 아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할 3년 정도 후면

마당이 온통 복수초 밭이 될지도 모른다.

복수초의 묘미는 하얀 눈 속에 노랗게 핀

설 중 복수초다.

깊은 산 숲 속이 아니고서야

서울 도심에서 눈 속에 핀 복수초를 볼 수 있으랴.

하지만 지난 3월 초 내린 눈 속에

2월에 피었던 얼굴을 다시 가린 복수초

꽃을 활짝 핀 모습이 아니어서 아쉽다.

여전히 마당을 제 변소처럼 드나드는 길냥이 때문에

배변 장소를 차단하느라

보기 흉하게 여기저기 철사를 구부려 꼽아 놓았다.

노지 월동이 되는 여러해살이풀을 키우려면

이런 정도의 수고는 해주어야

봄에 예쁜 꽃을 볼 자격이 있다고

길냥이가 날 훈련시키나 보다.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울 만큼

일찍 피고 지는 복수초

벌써 종자가 만들어지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길 위를 떠도는 길냥이의 존재도

자연 속 존재 중 하나려니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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