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
마당에서 복수초를 키우기 시작한 지 12년째
재작년 봄 꽃을 거의 30송이 정도 피운
거대한 개체로 성장했으나
안타깝게도 그 해 겨울 자취를 감춰 버렸다.
지상의 존재들이 없는 맨땅에
길냥이가 배변을 하고
그 흔적을 덮느라 땅을 파는 과정에서
뿌리째 뽑혀 죽어버린 것이다.
그 사이 종자가 발아하여 자란 개체가
올해 꽃을 피웠다.
이 아이도 서서히 수세를 키워가기 시작하면
수년 내에 그렇게 큰 개체로 자랄 것이다.
그 큰 개체가 사라지고 난 후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 새로운 싹들이 엄청 많이 돋았다.
멸종될 것 같다는 위기를
그동안 땅에 떨어진 종자들이 느꼈다는 듯
우후죽순 격으로 수많은 개체들이
새롭게 얼굴을 내밀었다.
그 아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할 3년 정도 후면
마당이 온통 복수초 밭이 될지도 모른다.
복수초의 묘미는 하얀 눈 속에 노랗게 핀
설 중 복수초다.
깊은 산 숲 속이 아니고서야
서울 도심에서 눈 속에 핀 복수초를 볼 수 있으랴.
하지만 지난 3월 초 내린 눈 속에
2월에 피었던 얼굴을 다시 가린 복수초
꽃을 활짝 핀 모습이 아니어서 아쉽다.
여전히 마당을 제 변소처럼 드나드는 길냥이 때문에
배변 장소를 차단하느라
보기 흉하게 여기저기 철사를 구부려 꼽아 놓았다.
노지 월동이 되는 여러해살이풀을 키우려면
이런 정도의 수고는 해주어야
봄에 예쁜 꽃을 볼 자격이 있다고
길냥이가 날 훈련시키나 보다.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울 만큼
일찍 피고 지는 복수초
벌써 종자가 만들어지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길 위를 떠도는 길냥이의 존재도
자연 속 존재 중 하나려니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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