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얼레지키우기

가루라 2021. 3. 23. 01:47

#얼레지

한층 따뜻해진 낮 기온에

얼레지가 활짝 피었다.

기묘하게 작년과 딱 같은 날이다.

마당에서 얼레지를 키우기 시작한 지 10년

그 사이에 종자가 떨어져

발아된 적이 두세 차례 있었지만

끝까지 자라지는 못했다.

올해 제법 큰 떡잎 한 장과 작은 개체가 보이는데

잘 관리하면 이번에는 개체수를 늘릴 수도 있겠다.

이 땅에 자생하는 야생화를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것은

화야산의 얼레지 때문이다.

2010년에 처음으로 얼레지 천국이라는 화야산에

야생화 촬영을 위한 출사를 했었다.

대부분 야생화 동호회와 함께 하지만

나는 집사람과 단둘이 지도를 보고 찾아갔었다.

계곡을 가득 채운 화야산 얼레지는

처음 보는 나를 야생화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봄이면 야생화 촬영을 다녀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을 접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봄철 키 작은 초본식물들을 촬영하기 위해

앵글 파인더를 쓴다.

쪼그려 앉아서 가급적 내 몸이

지면과 닿는 면적을 최대한 줄이려 노력한다.

촬영하고 내려오는 길에

오륙십 대 이상 되어 보이는 동호화 무리와 맞닥뜨렸다.

스무 명은 조히 되어 보이는데

여자들이 매트 같은 것을 바닥에 깔고

엎드려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많은 인원이 동시에 짓밟고 가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짓뭉개 지는데 매트라니.

키 작은 식물들은 키 큰 식물들이 이파리를 펼치기 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일찍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데

매트로 초토화시켜버리는 패거리의 무지몽매함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야생화 출사를 거의 중단했다.

대신에 마당에 야생화들을 키워

야외 출사 없이도 야생화를 볼 수 있기를

기대했었다.

그 사이 우리 집 마당에 심었다가

제대로 키우지를 못해서 사라진 것들까지 따지면

마당에 이름을 남겼던 식물들은 250종이 넘는다.

지난주에도 처음 보는 유럽바람꽃(노랑너도바람꽃)과

하늘바람꽃, 청화바람꽃, 매화헐떡이 등

몇 가지를 샀다.

몇몇은 노지월동이나 길냥이의 발길질 등으로

재배에 실패했지만

그나마 그 실패 덕(?)에

좁은 마당에도 그 많은 종을 다 수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점점 관리가 힘들어지는 단독주택살이

이 재미를 포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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