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설날의 단상

가루라 2024. 2. 10. 01:14

 

지금의 민속의 명절로 부르는 설날

이런 밤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집안의 일을 도와주는 일꾼까지

한 집에서 총 13~14명이 살았었다.

설 전날 밤이면

어머님께서는 우리들 앞에 설빔을 풀어놓으셨다.

새 옷이거나 때로는 고무신이거나 내복 등

매년 다른 설빔을 주셨었다.

설날이면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따라

어두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차례를 지내고

마루에 나가 안방에 앉아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그리고 이어서 어머니, 아버지께 세배를 드리고

떡국을 간단하게 조금씩 먹었다.

겨울용 검은 두루마기에 갓을 쓰신 할아버지 뒤를 따라

눈길을 걸어 큰집(하아버지의 큰 형님댁)에

차례를 지내러 가곤 했다.

큰집에서 떡국을 먹고 집에 돌아오면

삼촌들과 동생들 함께

동네 일가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러 갔었다.

집성촌이라 세배를 드리러 가는 집도

보통 열 집은 넘었었다.

그렇게 가가호호 세배를 드리러 가면

설날은 하루 온종일 먹는 날이다.

어느 집은 조청에 떡을 찍어 먹게 주시고

어느집은 전통 유과에 산자를 내어주시고

어느 집에서는 누름판으로 예쁘게 찍은

꽃 같은 떡을 내어 주셨다.

일가 할머니들께서는

잊지 않고 설빔에 대한 칭찬도 해주시고.

그런 설날 풍경은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고

아버님께서 시내의 학교로 전근하시면서

우리 가족만 도시로 이사를 한 후 끊겼다.

그게 벌써 60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설이라고

출가한 아들과 딸이 모두 집에 왔지만

손자들이 각 하나씩 둘 뿐이니

설날이라고 평시와 다른 게 없다.

설날 차례상만 옛날과 달라져 갈 뿐.

설날의 의미도 점점 더 퇴색되어

언젠가는 백과사전에서나 볼 습속으로 기록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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