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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랑을 가득채운 봄

가루라 2013. 4. 26. 12:56

매번같이 보아도 요식업소라는 생각에 그저 지나쳤던 석파랑

 

해마다 요맘 때면

인왕산 자락을 훑고 비스듬히 누워 내려오는 오후의 봄빛에

시골처녀의 얼굴에 발그레 피어나는 홍조처럼 빛나는 진달래에 시선을 빼앗기곤 했습니다.

 

오늘은 붉디 붉은 석파랑 진달래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어서

카메라를 들고 나섰습니다.

석파랑을 가득 채운 봄을 그저 렌즈를 통해 담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고수는 장비탓을 않는다지만 크롭바디의 한계일까요 ?

빛을 내 맘대로 요리하려는 제 생각이

석파랑의 화려한 봄 앞에서 그대로 부스러지는 참담함이란....

 

아니 육안으로 보이는 자연의 봄을 그대로 옮겨 담을 수 있을거라는 기대 자체가

애초 말도 안되는 과욕이었음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습니다.

 

제 블러그의 사진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 시점에, 그 장소에서 직접 보는 것만이

제가 전하고자 하는 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적송 아래 암반위에 올려진 석파정 사랑채와 정원의 150년생 감나무

뒤로 분홍빛 진달래가 어울리는 풍경> 

 

석파랑(石坡廊)은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별장터가 아닙니다.

석파 이하응의 별장 석파정은 오랜 기간을 거쳐 다시 복원되었지만

종로구 부암동 자하문터널 입구 한쪽에 작년에 개관한 서울미술관에 부속되어

미술관입장권을 사야만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석파랑의 원래 이름은 옥전장(玉田莊)이었답니다.

서예계의 대가로 알려진 소전 손재형선생이

폐허가 되어가던 석파정의 사랑채를 1958년 현위치에 옮겨 놓고

덕수궁 돌담, 운현궁, 선희궁, 박영효.김옥균의 철거가옥, 순정효황후 윤씨의 옥인동 생가

고종황제 즉위기념으로 세웠던 경복궁 만세문, 백제 신라의 와당 등

궁궐과 사대부 가옥의 철거 잔재들을 모아 현재의 집을 완성하여 옥전장이라 불렀답니다.

이름 그대로 폐허 속에서 찾아낸 옥구슬들만 모아 놓았던 것이죠.

 그러나 후대에 주인이 바뀌고 폐가가 되다시피한 옥전장을

현재의 주인이 1989년 매입하여 1994년 석파랑이라 이름짓고

한국궁중요리전문점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세검정 교회 계단에서 담은 석파랑과 인왕산 자락> 

 

석파정 사랑채는 원형과 반원형의 창과 회색벽돌로 쌓은 외벽 등

조선 말기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는데

흥선대원군이 난을 치던 대청방과 손님을 유하게 하던 건넌방으로 이루어졌답니다.

요즈음 주택에는 담겨져 있지 않은 손님을 위한 정을 상징하는 건넌방

석파정 사랑채는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될만큼

정이 가는 건축물이네요. 

<석파정 사랑채와 진달래> 

<옥전문에서 바라본 감나무와 본채>

뒤로 보이는 인왕산의 붉은 진달래, 노란 개나리, 하얀 산벚, 진녹색의 소나무가

검게 윤기나는 기와지붕의 건축물과 한데 어울려 멋진 경관을 연출합니다.

석파정이 올라앉은 거대한 암반으로 미루어

돌 석(石)자 고개 파(坡)자, 옛날 자하문고개는 바위고개였지 싶습니다.

<연두색 이파리와 함께 만개한 산벚나무>

중국식 회벽으로 장식된 건물 외벽과 인왕산의 산벚의 색깔이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석파랑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출구 버스승강장에서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상명대입구에서 내리면 바로 건너편 길가에 있어서 찾기도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