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행차/국내명소

북한산 승가사

가루라 2014. 10. 22. 20:04

한낮까지 속을 끓이다가 말없이 굽어보는 북한산을 찾았습니다.

산정상까지 오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

비봉능선을 오를 때마다 그냥 산문만 보고 지나치던 승가사를 찾기로 합니다.

시간은 벌써 오후 세시가 훌쩍 넘어

늦은 구월의 산속은 벌써 한기를 느낄 정도입니다.

늘 다니던 길이지만 오늘은 왜 이리 새로운지...

9월의 승가사 일주문 

2월의 승가사 일주문 

각각 한줄의 두 기둥위에 무거운 지붕이 얹혀진 일주문

이 산문(山門)을 지나면 세속의 잡념들이 사라질까요?

 

일주문을 지나면 미려하게 조성된 대리석 돌계단이 길게 이어집니다.

이곳까지 따라온 잡념을 떨치지 못해 계단수가 몇개인지 헤아릴 생각도 없이 오릅니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한참을 오르면

나 복잡해 하고 서있는 9층 석탑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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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승가사 오르는 계단

2월 승가사 오르는 계단

2월 승가사 오르는 계단

얼핏 서역의 라마교 느낌이 묻어나는 석탑

경천사 10층 석탑과 원각사 10층 석탑이 떠오릅니다.

비교적 최근인 1994년

당시 주지인 상윤스님의 발원으로 김광항씨가 설계하고 김광열씨가 조각하여 준공한

아자형(亞字型) 평면 9층석탑이랍니다.

영물과 동자승이 둘라싼 기단과 계단, 감실형의 탑신, 8개의 석주 그리고 4면의 조각된 사천왕상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지는 탑신에 새겨진 각기 다른 수인과 인자한 표정의 부처상

국내의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의 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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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장.지국천왕

다문.광목천왕

탑신의 부처상

탑신

탑 상륜부

위에서 내려다 본 9층석탑

위에서 내려다 보니 아(亞)자 모양이 아니라 완전한 만다라로 보입니다.

기단부만을 담아 보았습니다.

북동면 지국천왕과 아수라상

광목천왕상

9층석탑이 있는 광장을 지나 좌측 목재계단이나 우측의 비탈길을 따라 오르면

두번째 문격인 범종각 아래에 다다릅니다.

범종각 아래 양계단 사이를 지나자 제법 넓은 대웅전 마당이 펼쳐집니다.

승가사는 생각보다 연조가 깊은 사찰입니다.

756년 신라 경덕왕15년에 수태(秀台)스님이 창건한 고찰로

당나라 고종 때 장안의 생불로 칭송되던 천복사의 승가대사를 기려 지었답니다.

지금은 조계종 말사로 편제되어 비구니들의 도량으로 쓰이고 있지만

승가굴에는 보물 제1000호로 지정된 석조승가대사 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우측으로 오르는 길의 범종각과 요사채 

좌측 나무계단으로 오르는 길의 범종각 

한 때는 왕상공경(王相公卿)이 국난이 있을 때마다 참배를 드리던 곳으로

조선의 억불정책 속에서도 불교가 살아 남을 수 있도록 불씨를 살린 도량이랍니다.

참선 수행에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조심조심 사찰을 둘러 봅니다.

스님들이 안계신 틈을 타 대웅전과 영산전 안을 재빨리 담았습니다.

대웅전의 금불상 

 대웅전 우측 영산전의 금불상

대웅전 좌측에 있는 명부전 앞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정면 거대한 암릉 밑 암굴에 자리한 약사전이 보입니다.

석조승가대사좌상은 이 약사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1024년 고려 현종 15년에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머리 모양이 통상 불가에서 볼 수 있는 타입이 아닌 두건을 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왼손은 가사에 덮여 보이지 않고

오른손도 부처님의 수인과는 다른 모양으로 변설(辨說)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승가대사는 서역인으로 7세기에 당나라에 들어가 활동했는데

송주(誦呪)에 능하여 많은 신도들이 그를 따랐으며

사후에는 십일면관음보살로 비와 홍수를 다스리고 병을 낫게 하는 영험한 존재로 추앙되었답니다.

통일신라말에 유행했던 승가대사 사상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하네요. 

 

청아한 독경소리에 끌려 좌측을 보니 향로각이 특이한 외관으로 눈길을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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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약사전 

향로각 

향로각 옆을 지나 연화교를 건너면 약사전의 약사여래, 약수와 함께 승가사 3대 영물 중 하나인

보물 제215호 거대한 마애석가여래좌상으로 오르는 108계단이 펼쳐집니다.

거대한 화강암에 높이 5.9m 폭 5.04m로 양각된 항마촉지인을 한 마애석불

바위에 홈을 파서 끼워 넣은 팔각형의 보개(寶蓋)와

보개 좌우 그리고 어깨 좌우에 뚫어진 구멍은

과거에는 마애석불 앞에 전실(前室)이 있었던 흔적으로 보입니다.

6.25동란 때 큰 피해를 보았다는데

그 때 타버린 것일까요.

 

꽉 다문 입술, 오똑 솟은 코가 엄하게 보이지만

넓은 사각형의 얼굴, 곡선을 그리는 눈썹, 어깨까지 길게 늘어진 귀가

엄하게만 보이는 것을 누그러뜨리는 얼굴입니다.

 마애석불 전면에서 내려다 보니

멀리 보현봉 사자능선 자락이 길게 이어지고

가파른 경사로 인해 바로 앞 향로각 창문으로 마애석불이 온통 쏟아져 들어갈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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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석불에서 본 향로각  

마애석불 

연화교 

마애석불에서 돌아서는 길

대웅전 외벽의 양각으로 새겨진 불화들이 이채롭습니다.

명부전 앞에서 서면 대웅전의 추녀 끝으로 범종각이 들어 옵니다.

승가사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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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과 대방 

풍경 

범종각 

범종각 외곽 동쪽 모습입니다.

아래 승가사 전도에서 볼 수 있듯

승가사는 북한산 사모바위와 승가봉 사이 아늑한 골에 자리잡은 그리 크지않은 사찰입니다.

올려다 본 범종각에서 쏟아지는 종소리가 온 골 구석구석에 딱 미칠만큼 말입니다.

여름이 지난 산 속의 해는 유난히 짧습니다.

오후 늦게야 찾아갔던 승가사를 덮는 산그림자에 쫓기듯 내려 오는 길

항상 어딘가를 찾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뭔가 빠뜨리고 온듯 허전합니다.

알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이 알게 되는 기쁨과

처음 보는 것들로 머리 속이 가득 채워지는 지적 포만감을 안고 되돌아와야 하는 길에

왜 늘 뭔가 허전함이 돌아서는 발걸음을 뒤따라 오는 것 같을까요? 

산문 입구에서

승가사 전도 

2월 승가봉 가는 길에 담은 승가사 전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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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사 좌측능선에서

승가봉에서 본 전경

승가사, 사모바위, 비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