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중대백로와 이카루스

가루라 2020. 10. 6. 01:43

#중대백로

오랜만에 나선 홍제천변 산책

도심 하천이 제대로 살아나면서 수생식물, 수변식물은 물론

많은 새와 물고기, 자라 등이 하천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체구가 작은 쇠백로와 해오라기부터 큰 체구의 중대백로, 왜가리까지

개체수도 제법 많다.

그만큼 먹이사슬이 건강하다는 것일 게다.

큰 날개로 하늘을 나는 중대백로나 왜가리의 비행을 보고 있으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발명가 다이달로스의 아들 이카루스(Icarus)가 생각난다.

이카루스는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꿈을 상징하는 것이자

분수를 모르면 죽는다는 비극적 결말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노스왕에 의해 감금되었던 크레타섬을 탈출하기 위해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을 모아 밀납을 발라 날개를 만든다.

아들에게도 날개를 만들어 주며

태양 가까이 날면 밀납이 녹아 날개가 떨어지고

바다 가까이 날면 물기에 젖어 날개가 무거워지니

항상 하늘과 바다의 중간을 날아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하늘을 나는 자유로움에 이를 망각한 이카루스는

하늘 높이 날았다가 태양에 의해 밀납이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는다.

인간들의 삶 속에도 이 신화가 시사하는 바를 많이 볼 수 있는 걸 생각하면

이것은 단순히 신화가 아니지 않을까 싶다.

백로과의 새들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수초 사이를 발로 헤집어서 놀라서 빠져 나온 물고기를 잡는다.

키가 큰 중대백로는 물고기가 움직일 때까지 꼼짝 않고 물 속에 서서 기다리다가

이를 모르고 움직이는 물고기를 잡기도 한다. 

벼가 익을 시기에는 논에 물을 빼기 위해 물길을 만든다.

이 즈음 도랑치고 가재를 잡는 것이 아니라 미꾸라지를 잡곤 했었다.

농약을 많이 써서 요즈음 논에는 미꾸라지를 찾기 힘들다.

논에 있어야 할 미꾸라지가 도심 하천으로 몰렸나보다.

홍제천에도 미꾸라지가 제법 많은 지 

중대백로가 미꾸라지를 잡는 걸 종종 볼 수 있으니.

살이 통통하게 올라 성인 엄지손가락 굵기만한 미꾸라지를 잡은 중대백로.

저 정도 크기면 사람 손으로 잡아도 저항이 심하다.

강력하게 저항하는 미꾸라지를 어느 정도는 제압해서 힘을 빼야

중대백로가 삼킬 수 있다.

삼키기 좋게 제압하는 과정에서 떨어뜨리면

다 잡았던 물고기를 물 속에 놓칠 수 있다는 걸

중대백로는 잘 안다.

그래서 잡은 물고기를 물고 물 밖으로 나온다.

강한 부리로 이리 저리 위치를 바꾸어 물면서

미꾸라지의 숨통을 조인다.

그 과정에서 이렇게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재빨리 다시 미꾸라지의 머리를 물었다.

미꾸라지가 어느 정도 힘이 빠졌다 싶은가 보다.

지느러미가 거꾸로 되어 목에 걸리지 않게

머리부터 삼킨다.

백로는 이카루스처럼 날아도

한 번 잡은 물고기는 어떻게 해야 놓치지 않는지 잘 알고 있다.

누가 감히 백로에게 새대가리라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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