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팔월 한가위 단상

가루라 2020. 10. 1. 00:08

아버님 돌아가신 후 제사를 서울로 모셔온 지 벌써 십년째.

명절이면 최소 열시간여를 혼자 운전하여 찾아가곤 했던 고향.

심지어 어느 해 구정 때는

얼어붙은 고속도로를 뚫고 27시간을 달린 적도 있었다.

차 안에서 해가 뜨는 것을 두 번이나 보았다니!

그 후부터는 열 몇시간을 걸려도 준수하다 여길만큼 면역력이 생겼지만.

그 힘들었던 효도의 길을

25년 동안 군소리 없이 동행해준 집사람과 아이들.

정작 벌초 외에는 명절에 고향을 갈 일이 없어지고 나니

힘들었었지만 그 때가 좋았다는 얘기를 집사람과 종종 하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벌초조차도 오지 말라는 동생 덕분에

올 한가위는 어찌 지내는지 실감할 수가 없다.

핵가족시대에 돌입한 우리 세대에 벌써 이런 상황일진데

대부분 아들 하나인 우리의 아들 세대로 가면

명절인들 의미가 있을까?

차례는 물론 제사조차도

혼자서 술잔 올리고, 절 올리고, 축문 읽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한가위에도 고향찾기를 지양하자는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 연로한 고향 어른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기왕에 사라져 가고 있던 명절이나 세시풍속들이

소멸되는 속도도 그만큼 더 빨라질 것 같다.

언젠가는 백과사전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차례상을 위해

지방을 쓰고, 밤을 쳐보지만

마음은 허허롭기만한 중추절 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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