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홍제천 가을 소경

가루라 2020. 12. 3. 01:08

#홍제천 가을 소경이 좋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달려왔던 산업사회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세상이 되면서

복지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고

이에 맞추어 행정당국이 추진하는 사업들이 많다.

그 중 하나인 도시재생사업은

슬럼화된 공단이나 주거지를 재개발하는 것도 있지만

도심하천 재생사업의 긍정적 효과를

무시할 수가 없다.

이명박정부 당시의 청계천 복원을 필두로

기존에 있던 하천의 천변을 정비하여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개설하고

운동시설과 휴식공간을 설치하는 것이 대부분.

이를 이용하는 도시인들의 건강유지나 증진으로

사회적 의료비부담이 줄어든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시설이다. 

도심하천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갈수기에 물이 없는 건천이었던 홍제천에

지하철 통로에서 수집된 지하수를 끌어와

물을 흘려 보내기 시작한지 12년.

홍제천은 그 사이 자연하천으로의 모습을 갖추었다.

하천 여기저기에 모래톱이 만들어지고

이곳을 주서식지로 삼는 모래무지, 피라미, 자라 등도

돌아왔다.

물이 정체된 곳에는

한강을 타고 올라온 잉어, 붕어, 메기가 자리잡고

그 사이에 누군가 방사한 관상어들,

비단잉어와 금붕어조차 겨울을 나고 함께 살아간다.

하천변에는 물억새, 갈대, 부들, 달뿌리풀, 말풀 등

다양한 수변식물들이 자리잡고

물 속에는 나사말과 붕어마름 등 수생식물까지 생겼다. 

키가 큰 이런 수변식물들의 물 속에 드리운 뿌리는

다양한 수생식물과 어울려

물고기들의 산란과 은신처가 될 뿐만 아니라

지상부분은

곤충들과 갓부화한 새들의 은신처가 되어

인간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

하천변 둔치 운동시설이나 휴식공간 주변에는

꽃과 관상수들을 심어

도심하천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천이 생활과 동떨어진 곳이 아님을 알려준다. 

다양한 색깔, 다양한 모양의 꽃들.

값 비싸고 진귀한 것이 아니라

흔하디 흔한 것.

그래서 일상에서 친숙한 꽃들.

도심 하천은 생뚱맞은 곳이 아니라

일상과 어우러지는 친숙한 공간이라는 것.

그 꽃들이 종자를 뿌려

이듬해 그리고 또 이듬해

계속 같은 자리에서 증식하여 군락을 이루고

새들도 물고기를 잡고

산란과 육추를 해서 대를 이어 가는

그런 도심 속의 작은 자연.

고사리같은 손으로

엄마와 가위바위보로 징검다리를 건너는

어린 아이의 추억 속에

홍제천이 오래도록 기억될 역사가 될 것이다.

이런 도심하천, 정말 좋다.

다만 시뻘건 녹물이 섞인 지하수를

정화해서 내려보내기만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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