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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실계곡 단풍

가루라 2020. 10. 30. 00:16

#백사실계곡단풍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 시집 '슬픔의 뿌리'중에서-

서울 도심 속 비경

종로구 소재 백사실계곡의 단풍을 찾아나섰다.

억겁을 돌아 닳아질대로 닳은 바위를 흘러내리는 아담한 폭포 옆

규모는 꼭 그 크기만하지만

깨달음의 크기는 훨씬 더 커 보임직한 현통사.

사찰을 포근히 감싸 안은 숲부터 단풍은 시작된다.

백사실계곡의 단풍은 이제 막 시작.

아직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만큼 두껍게 덮은

푸르름이 그대로인 숲 속을 잠깐 걸으면

눈 앞에 펼쳐지는 개활지.

백사실 별서터 주변의 단풍이 시선부터 사로잡는다.

봄부터 여름 늦도록

코로나로 인해 집안에 갇혀 지내야 했던

아이들을 가득 품어내었던

도룡뇽과 버들치, 가재, 개구리의 계곡.

그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골짜기를 가득 메우던 환호소리에 고무되었던듯

올 단풍은 유난히도 화려하다.

골붉은 단풍나무부터

오래 묵어 노랗게 물든 느티나무,

벚나무, 오리나무, 참나무, 소나무 등등

많은 수종의 나무들이 다양한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숲 속에 들어 앉으면

사부작거리는 새들의 발걸음 소리와

기름진 솔방울 씨앗으로 겨울잠을 준비하는

청설모의 바쁜 목넘김 소리조차도 들릴듯

조용하다.

그 조용함을 두드리듯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황홀한 단풍.

아는 사람은 안다.

이곳이 서울 도심 속 숨겨진 비경

백사실계곡임을.

하얀 모래가 사라진 계곡을

두껍게 덮은 낙엽으로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는 의미가 사라진들.

백사 이항복의 별서터라거나

유당 김노경의 별서터라거나

이미 사라지고 없는 별서의 주인이 누구였든들

이 아름다운 가을의 주인은

바로 당신인 것을.

주인을 잃은 백사실계곡은

이 곳을 찾는 당신에게

이 가을의 단풍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라 말하는데.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장거리 단풍행락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자제하는 당신께도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보답으로

충분한 설레임을 주는 백사실계곡 단풍.

혼자 또는 두세명씩 찾거나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은 그래도 고맙다.

등산복 차림에 단체로 찾아와서

벤치에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경은

올 가을만은 피하고 싶다.

단풍 행락철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던 설악산, 주왕산, 내장산 등을 찾던

사람 구경까지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굳이 이곳에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 것이 좋다.

이 곳은

조용히 벤치에 앉아

계곡에 떨어지는 낙엽소리를 듣고

시간의 흐름 속에 시시 각각으로 변하는

단풍의 색깔을 즐기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의 빛깔마저도

감별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곳이다.

그렇다고 혼자 찾기에는

코로나로 인한 이 가을이

너무도 우울하다.

백사실계곡의 단풍을 즐기기에

지금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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