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사진/풍경사진

아, 단풍잎 !

가루라 2020. 11. 5. 00:29

#단풍잎

매년 이맘 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시.

무엇보다 시를 좋아하거나

굳이 시집을 즐겨 읽지 않는 사람도

세상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단풍을 보면

누구나 이 시를 떠올릴 것이다.

"오메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붉은 감닢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메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래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메 단풍 들것네"

 

- 김영랑 "오메 단풍 들것네" -

가슴앓이로 속이 타들어갔다.

물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얼굴이 빨개져서 보기 좋구나

단풍나무 혼자서 벌겋게 달아 오른다

이제 너의 불붙은 눈 피할 수 없다.

 

제 각각 표현하는 시구(詩句)는 달라도

단풍을 바라보는 마음과 시선

시인들도 다 같지 않을까?

학창시절에는

어줍잖은 싯구로 시를 쓴다 긁적대기도 했지만

바쁜 일상과 엄혹한 현실에 쫓긴 메마른 가슴으로는

형형색색 온 몸 물들인 단풍

한 줄의 글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게 갈증난 이들에게

시 한 줄 읽게 만드는 계절.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무리지어 불타는 모습은 무리 그대로

때로는 수줍은듯 홀로 물들어도

트리밍을 통해 사진으로 담아낸 단풍은

프로든 아마추어든 어떤 사람이 담아도

그 아름다운 빛깔 변할 수는 없다.

때로는

단풍잎이 아름답다 말하는 사람과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이웃 아낙도 있지만

함부로 열리기 어려운 그 무거운 입으로

단풍이 아름답다 말하지 않은 남편도

단풍이 아름답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코로나로 인해

단풍 명소로 알려진 곳을 찾아 가지는 못해도

지금 서 있는 거기에서 가까운 곳 어디서든

한 잎, 두 잎 빨갛고 노랗게 물들인 고운 단풍.

어디 찾지 못하랴.

작년에 갔었던 단풍 명소들은 물론

올해는 가보려니 했던 곳조차 못 갔지만

가까이에서도 만날 수 있는 단풍.

오메 단풍 들어부렀네.

다 늙은 누이에게 말하지 못해도

사십년 넘은 사랑 식었다 말하는 아내에게

한 잎 건네지는 못해도

함께 걷는 어린 손자가 주워 내민 단풍잎 한 장.

그 예쁜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할아버니 단풍잎!

집 가까이에서 찾은 가을.

코로나에 쫓겨 잊고 있었던 계절의 변화.

굳이 멀리까지 찾아가는 단풍놀이가 아니어도

올해는 의미가 있다.

코로나에 걸린 가족없이

온전히 단풍을 즐길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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