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일정이 끝나는 날 오후 크렘린 입장

오전내내 불던 눈보라가 그치고 햇살의 따뜻함이 고맙다.

 

크렘린궁에 들어서서 소비에트 전당대회장 앞을 지나면

사원광장의 황금빛 둥근 첨탑들이 시선을 끈다.

비교적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황홀한 자태를 드러내는 사원들 

 

러시아의 사원건축은 대부분 이탈리아건축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반3세는 심하게 낙후된 총주교의 무덤 우스펜스키사원을 재건하기 위해

러시아 전역에서 유명한 건축가들을 모아 재건하기 시작하였으나

지붕을 올리기도 전에 건물이 붕괴되어 버렸단다.

이에 황제는 당시 건축술이 가장 발전되어 있었던 이탈리아에 사신을 보내

아리스토텔 피오라반티라는 이탈리아 건축가를 초빙 우스펜스키사원을 완성했단다.

 

모스크바공국 심장부에 외국인들의 기술로 지어진 사원들

러시아 학자들은 건축적 해설에 있어서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러시어 정교의 건축 특성보다는 궁전의 홀과 같은 양식에

종교적 색채보다는 오히려 세속적 색채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크렘린 사원광장의 사원들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길이 기억되고 있다. 

12사도 사원과 함께 있는 대주교궁의 뒷 모습

영어 명칭은 The Patriarch's Palace with the Twelve Apostles' Church and one-Pillar Chamber로 길다.

1653년 ~ 1655년에 지어졌으며 1층 the one-Pillar Chamber에 전시실이 개방되어 있다는데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좌측부터 이반대제의 종루, 짜르의 대포, 성모승천성당

제정러시아 황실의 국방력을 상징하는 짜르의 대포

전장 5.34m, 포신 둘레 1.2m, 직경 60Cm, 무게 40톤

표트르 이바노비치 황제 재위 중이던 1586년 안드레이 초호프가 제작

크렘린 방어용으로 붉은광장의 처형장 로보노예 메스토 근처에 설치하였단다.

현재의 장소로 견인할 때 무려 말 200필이 끌고 왔다는데

만들어진 이후 단 한차레도 발사된 적이 없다고 한다.

실험용으로 한두번 발사된 적이 있었다고도 하는데

정말 발사된 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고

외적에 대한 경고용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인가보다. 

 

2차대전 말기 일본 군부에는 거함거포주의가 대세여서

전함 야마도와 무사시호에 포신 직경이 60Cm나 되는 함포를 설치하였으나

장전하고 거포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다

포를 한번 쏠 때마다 반동으로 인하여 함선이 흔들릴 정도였으니

짜르의 대포를 쏠 경우 후반동을 제어하는 고정핀은 얼마나 크게 제작해야 할까

포신 아래 놓여 있는 까만 구슬이 탄환이다. 

12사도사원 옆 모습과 짜르의 대포

세계에서 가장 큰 종, 짜르의 종이다.

1733년 이반 마따린이 여제 안나 이바노브나에제를 위하여 주조하여 1735년 완성되었단다.

높이 6.14m, 직경 6.6m, 무게가 무려 200톤이나 된다.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리우는 우리나라 최대의 종 성덕대왕신종이 높이 3.3m이니

경주에서 보신 분들은 그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종의 표면에는 짜르 알렉세이와 안나 이바노브나여제의 초상

종의 유래를 적은 명문들, 그리고 5개의 이콘화(성화)로 장식되어 있다.

불행하게도 이 종은 1737년 모스크바 대화재 때 공장에도 불이 붙어 달궈진 종에

누군가가 물을 끼얹는 바람에 깨져버려서 한번도 울려보지 못한 채

현재의 위치에서 보는 종으로 놓여져 있단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종 

깨진 파편의 무게만도 11.5톤, 크기도 사람 키만한 높이다.

깨진 틈으로 보이는 종의 두께는 사람 어깨넓이만하다.

과연 이 종이 정말 울린적이 있을까 ? 

종의 크기 비교 

위치 : 11, 18번 


 

모스크바여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역시 크렘린궁 탐방이다.

전 러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상징적인 건축물이자

러시아 역사와 문화의 총체라할 것이다.

 

모스크바 체류내내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절묘하게도 크렘린궁을 입장하는 단 한시간여 동안만 그치고

반짝 개인 푸른 하늘을 보이는가 싶더니

사원광장에 이르러 또다시 불어치는 눈보라

시베리아의 겨울 날씨는 가늠을 할 수 없고

아무래도 겨울은 관광하기에는 좋지 않은 시기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출장지 일을 마무리하고 귀국하는 날

머리를 짓누르는 스트레스도 없이 홀가분한 기분으로 찾은 크렘린궁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제정러시아시대의 찬란한 문화는 여행자를 감탄하고 또 감탄하게 할 뿐이다.

 

다만 세차게 부는 눈보라속에 노출된 손가락이

더 이상 셔터를 누를 감각이 없을 정도로 추워질 때까지

이리 잡아 보고 또 달리 구도를 잡아 보아도

햇빛이 없는 사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아마추어의 실력을 탄할 밖에..... 

 

<크레믈에 입장하는 길 구타피야탑과 삼위일체탑>

<하얀 왕관처럼 보이는 것이 구타피야탑(The Kutafiya Tower) 스빠스까야다>

크레린궁의 입구로 예전엔 군사적 목적을 수행하는 탑이었다.

이곳이 입장 티켓을 사는 곳이다.

토요일 게다가 러시아음식 블린느이를 먹는 날 행사가 크렘린궁안에서 개최되고 있어서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 서있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 일부가 욕이 섞인 것 같은 러시아어로 꿍시렁대더니

그냥 가버리기도 하고, 줄은 줄지 않고, 러시아어는 한마디도 모르고

불안한 가운데 한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입장권을 샀다. 

350루블짜리 입장권

구타피야탑 앞에서 삼위일체교(Trnity Bridge)와 삼위일체탑(Trinity Tower) 트로이츠까야탑을 담았다.

삼위일체탑(트로이츠까야) 정면 사진

삼위일체탑 입구에서 구타피야탑을 바라보면

좌측에 삼성의 옥탑간판이 보인다.

붉은광장 출입구 정면에 보이는 현대자동차 옥탑광고판과 함께

우리나라 기업의 높아진 위상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삼위일체탑 아래 출입구에서 구타피야탑을 담았다.

테렘궁(The Terem Palace)의 첨탑

테렘궁은 17세기 러시아황제 짜르의 거소로 쓰였고

지금 현재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러시아 대통령의 관저로 쓰이고 있다.

크렘린궁 지도, 안내인도 안내책자도 없이 들어가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사진으로 담아 왔다가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해서 만들었다.

출장가기전에 미리 이런 자료들을 찾아 갔더라면 더 좋았을 걸...

크렘린은 환상의 방사형 체계를 갖춘 모스크바 도심 한 가운데 일그러진 삼각형모양의 성채로 이루어져 있다.

모스크바강을 끼고 있는 방어적 위치의 낮은 구릉지에 자리잡고 있는데다

20개의 각기 다른 모양과 기능을 수행하는 탑을 성채(크레믈)로 연결한 공고한 성임을 알 수 있다.

크렘린안에는 14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러시아건축사를 알 수 있는 많은 건축물이 있다.

고딕양식의 지붕을 가진 많은 탑들과 병기고, 소비에트 전당대회장, 내각궁전, 무기고, 이반대제의 종루, 짜르의 대포 등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역시 크렘린의 가장 아름답고 역사적인 공간은

많은 사원들로 둘러싸인 아래 그림의 17번 사원광장이다.

크렘린궁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소비에트시절 소비에트 전당대회장으로 쓰였던

크렘린궁(The State Kremlin Palace)이 있다.

블린느이 먹는 날 행사장으로 쓰일만큼 구 소비에트붕괴 후에는 일반 공연등 행사장으로 쓰이고 있다.

좌측에 보이는 노란 건물은 병기고다.

각종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는데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성니콜라스탑과 붉은광장에 붙어 있는 국립 역사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사원광장으로 가기전 입구쪽을 다시 담았다.

무기고 안쪽에 있는 노란 건물은 대통령집무실로 쓰이는 건물이란다.

대통령관저로 쓰이는 테렘궁 입구

크렘린은 12세기 유리돌고루시대에는 작은 모스크바 군주의 목재 성채에 불과하였으니

이반 3세에 이르러 통합된 러시아의 수도로써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는

대대적인 재건축으로 오늘날 크렘린의 외양을 갖추게 되었다.

계속해서 짜르의 대포, 짜르의 종, 크렘린 사원광장의 사원들을 시리즈로 게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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