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행차/국내명소

세검정 춘경

가루라 2020. 4. 11. 01:41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뜻밖의 선물 중 하나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거리두기로 인해

각종 모임들이 다 취소하니

때로는 불편하기도 했던 그 모임조차 궁금해지고

아이들 학교 등교도 다 봉쇄되니

갈 곳 없는 유치원, 초등학교 아이들을 동반한 엄마들

동네 구석 구석을 돌아 보고

세검정, 백사실에도 예전과 다르게 사람의 발길이 늘었다.

가까이에 있어서

예전 같으면 봄이 왔네 하고

먼발치로 그냥 한번 보고 지나쳤을 곳.

대중교통 이용을 피하다 보니 오갈데 없는 나의 발길도

시시각각 변해가는 세검정의 봄을 다시 보게 된다.

세검정(洗劍亭)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킨 후

더 이상의 피비린내 나는 정쟁을 없게 하자는 뜻으로

이 곳에서 칼을 씻어서 그렇게 불렀다는 설이 있다.

세검정 근처에 조지서(造紙署)터가 있었고

조선시대에 사초(史草)를 썼던 한지의 먹을 이 곳에서 씻어서 재활용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몇년전에 세검정에서 세초식(洗草式)을 재현했었다.

그런 것으로 보아 왕의 실정이나 폭정을 낱낱이 기록했던 사초를

후환이 없도록 씻어내는 것을 은유적으로 세검으로 표시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사견이다.

북한산성과 한양도성을 연결하는 출입문인

홍지문이 근처에 있고

세검정 주변에 이를 수호하기 위한 병영이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세검정의 유래는 검을 씻었다는 것이 유력하다 할 것이다.

2008년까지만 해도

세검정 윗쪽 하천부지에 무허가 주택들이 몇채 있었다.

세검정초등학교 옆 하천 복개상가였던 신영상가를 철거하여 홍제천을 복원하고

이어 하상의 무허가집들을 2008년 하반기에 철거했다.

그 후 그 자리에 수변공원을 조성하고

체육시설 몇가지를 설치했었다.

물론 좁은 공간이지만

살구나무, 피자두나무, 자귀나무, 수양버들 등을 심어

녹지공간을 조성하기도 했었다.

그 동안은 동네 노인들 몇몇분만

운동기구들을 이용하기 위해 이 곳을 찾았을 뿐

세검정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온 적이 없다.

때마침 작년부터 조금씩 피기 시작했던 피자두나무가

올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니

오갈 데 없는 젊은 사람들과 아이를 동반한 엄마들의

킬링타임용 명소가 된듯하다.

사람이 비교적 덜한 오후 늦은 시간에 찾아가서

사진을 담았지만

그래도 예년보다는 사람이 늘었지 싶다.

그 동안 거의 찾지 않았던 곳을 세차례나 찾았으니

코로나 덕분에 나도 참 많이 간 셈이다.

코로나가 아무리 설쳐대도

자연은 때 맞추어 변함없이 꽃을 피우는 계절이다.

꽃축제의 명소로 소문난 곳들은

집단감염의 우려로 죄다 차단되었으니

마음까지 우울한 사람들은 소소한 곳의 꽃이라도 찾을만도 하다.

지팡이를 든 노인도 아내의 손길에 의지해

꽃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이 곳을 찾았지 싶다.

사진을 담기 위해서는

하천 아래로 내려서서 정자 가까이 접근할 수도 있다.

정자 앞에 놓인 섬돌을 건너 홍제천을 따라 조성된 길을 통해

한강 성산대교까지 걸어 갈 수도 있다.

세검정 건너편의 도로 세검정로6길에서

건너다 보고 사진을 담기도 했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T자형 팔작지붕 구조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봄에 세검정 사진을 이렇게 많이 담은 적이 없다.

그렇게 많이 담았어도

애정이 가는 사진들이 많다.

코로나19로 인해 다시 발견한 세검정의 진면목

봄 얼굴을 길이 기억하는 봄이 되겠다.

어느 봄이 있어

이렇게 자태를 뽐내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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