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향수병에 빠진 매실나무

가루라 2020. 5. 4. 01:17

유래없이 따뜻했던 지난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실나무 가지가 심상치 않다.

헐벗은 상태 그대로

꽃망울이 달린 가지가 그리 많지 않다.

어머님께서 잘 길러내신 묘목을 가져다 심은 지 10년

작년에는 제법 달려서 한양푼 정도 땄는데

올해 달린 꽃으로 보면 구경하기도 쉽지 않을듯 싶다.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는 매실은

대부분 남부지방에서 딴 것들일뿐

매실의 북방한계선은 사실 저 아랫녘이다.

오상고절에 꽃을 피우는 건 너뿐인가 하노라

하지만 오상고절에 꽃만 볼 수 있을 뿐 열매는 또 다른 문제다.

꽃이 좋으면 열매가 많다는데

매화가 만화방창 피어도

중부지방에서는 정작 매실을 수확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꽃들이 활짝 피었는데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몰아친 꽃샘추위에 꽃이 냉해를 입어

매실이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게 일수다.

그래도 한됫박 정도라도 따면

매실장아찌라도 담글 수 있는데

지금까지 열매 수확이라고 해 본 것은 단 두어차례뿐.

그래서 매번 아름다운 꽃을 보고

달콤한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해보지만

그래도 매실이 달리지 않은 매화는

타고 갈 수 없는 고향열차처럼

안타깝다.

고향에서 가져다 심은 지 딱 십년인 올해.

꽃눈은 커녕 잎눈조차 보이지 않은 매실나무 가지들이 애처롭다.

벌거벗은 채 매서운 찬바람을 온전히 받아낸 매실나무.

따뜻한 고향이 그리운 것일까?

나이가 점점 더 들어가니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목전에 벌어지는 상황들이

어린시절 고향의 추억에 걸쳐져 있다.

사람은 어머니의 품으로부터 출발하였다가

노후에는 다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듯

나이가 깊어 갈수록 더 그렇다.  

우리 또래는 대부분 자연과 함께 했던

어린시절의 추억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학교 수업 끝나면 학원으로,

학원 수업 끝나면 과외로 길기만한 하루를

잿빛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 보낸 아이들은

노후에 고향에 대한 어떤 추억을 가질 수 있을까?

주거문화가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

굳이 전문적인 자료를 찾아 보지 않아도

뻔하게 그 현실은 예측할 수 있다.

고향에서 올라 온 매실나무도

십년만에 고향에 대한 향수가 찾아온듯

움츠리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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