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북한산을 수차례 오르내리면서도
그저 발치에서 올려다 보기만 했습니다.
혹여 친구들 여럿과 같이 가는 길이 있었어도
아에 꿈도 꾸지 말라며 우회하곤 했었죠.
그럴만큼 북한산 비봉을 오르는 것은 내게는 금지된 장난이었네요.
넘어서는 안되는 위험한 불륜같은 것을 꿈꾸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다가 마침내 그냥 돌발적으로 비봉을 올랐습니다.
뇌쇄적으로 보이는 니나노집 여인네의 치마끈을 취한 김에 풀어 헤치듯이
혼자갔던 산행에 일면식도 없는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앞뒤 잴 겨를도 없이 등떠 밀리듯 비봉을 올랐습니다.
<사모바위에서 담은 비봉>

북한산 비봉 정상에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져 있어서
비봉(碑峰)으로 불립니다.
원래의 비석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지금은 복제품이 세워져 있지요.
서기 555년 진흥왕 16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운령, 황초령, 창녕비 등과 함께 현존하는 네개의 진흥왕 순수비 중 하나입니다.
신발이 변변치 않았을 그 옛날에도 이 험한 암봉을 올라 비석을 세웠었는데
릿지기능이 잘 된 첨단 신발을 신고도 오르기를 주저했었다니...
<비봉 코뿔소바위 위의 산객들>

사실 직장에 얽매어 있을 때는
제게 있어서 산은 OJT다, 단합대회다 해서
어거지로 정복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을 뿐입니다.
결코 즐기거나 누릴 대상은 아니었었지요.
그래서 은퇴 후에야 뒤늦게 다니기 시작한 산행은
조금 위험하다고 알려진 암봉은 되도록 오르는 것을 피했었습니다.
준비도 않된 상태에서 올라보고 싶은 욕구를 누르는 것은
산에 대한 경외지심의 표현이라 위로하면서 말입니다.
<비봉 정상의 등산객들>

그러다가 2~3년전 카메라를 둘러메고 혼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슬슬 제 주제를 너무 과신하기 시작했나 봅니다.
칼바위능선을 혼자타기도 하고
향로봉을 넘보고, 숨은벽·백운대를 올라서고
마침내 저지난 주말 문수봉 북쪽 사면의 철책을 잡고 내려와서
내친김에 비봉까지 차고 올랐습니다.
하, 그 기쁨이란...
비록 높이야 560m밖에 되지 않지만 위험한 암봉으로 알려져서
집에서 빤히 보이는 비봉 정상에 아른거리는 그림자들을 보며
정상에 설 그 날을 그려 보았었나 봅니다.
<비봉 정상의 사람들>

그리고 마침내 북한산 비봉 정상에 섰습니다.
바위 겉에 짝짝 달라붙는 새신발을 신고 당당히 올라
비석 옆에 섰습니다.
2006년에 복제비를 세웠다니
그 이전에 올랐더라면 진품을 만져 볼 수 있었겠네요.
아쉽다! 올라서니 비로소 이런 표현도 하게 되고...
<북한산 비봉 정상에 서다>

정상에 서면 장구를 갖춘 자들만 오를 수 있는 북서쪽 절벽을 오른 사람들과
저처럼 동쪽 바위구간을 통해 오른 사람들로 확연이 구분이 됩니다.
발아래를 내려다 보면 올려다 보는 것보다 더한 현기증을 느낄 정도입니다.
향로봉과 비봉자락 사이 골을 타고 오른 바람이 머릿 속을 차갑게 식혀줄 즈음
내려가는 것을 걱정하게 됩니다.
사실 릿지로 오르는 바위구간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훨씬 위험하고 겁나는 것이어서 말입니다.
<서울 도심을 굽어보는 진흥왕 순수비>

다행히 비봉에 오른 많은 사람들 틈에 뒤섞여서 하산한 탓에
공포감조차 희석되었나 봅니다.
무사히 내려 온 것에 감사하며 오르는 것은 이번 한번으로 그쳐야겠다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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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바위 측면 구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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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 정상부 줌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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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아래로 |
비봉을 내려와 향로봉쪽으로 향하는 길에 바라본 비봉 북서쪽 얼굴.
감시원이 상주하여 안전헬멧과 장구를 갖춘 사람만 올려보내는 구간입니다.
엔돌핀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 릿지나 암벽을 즐기는 사람들은
평범한 산행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중독성이 있는 놀아드레날린분비가 지나친 것이지요.
그런 인구가 늘어난만큼 산행중 안전사고도 많이 발생하구요.
그런 분들에게는 중독성이 있는 극단적 흥분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세로토닌적 삶에 대한 인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비봉 뒷면을 릿지로 오르는 사람들>

<비봉서쪽 등정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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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릿지 등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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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릿지 등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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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얼굴 |
<북한산 비봉의 다른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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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쪽 얼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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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 정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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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봉에서 본 비봉 |
<어느 맑은 여름날 사모바위에서 담은 비봉>

<향로봉에서 담은 북한산 비봉능선, 의상능선 파노라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