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사랑채 앞에

아버님께서 가꾸시던 넓은 2단 화단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며

나무들이 때가 되면 꽃을 피웠고

이것을 보며 자란 나는

그것들이 내 잠재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아파트생활을 정리하고

단독주택에서 생활을 시작한 것은

어쩌면 그 잠재의식이 깨어난 탓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

땅에 대한 할아버님의 평소 지론도 그랬었지만

그 속에 자라는 모든 것을 사랑하셨던

아버지의 영향도 그랬었다.

이 집에 이사 온 이후

꽃들을 사서 심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우리집 마당에서 살아 있거나

한 때 살았던 것들까지 합치면

무려 300여종이나 된다.

그러니 좁은 마당은 무질서하고

그 무질서함 속에

살만한 것들은 이제 거의 자리를 잡았다.

나무들은 어쩔 수 없이 붙박이지만

여러해살이풀들은 계속 바뀌어갈 것이다.

이제 꽃이 진 철쭉 전정해야 한다.

작년에 하지 않았으니

올해는 강전정을 할 수밖에 없다.

내년에는 철쭉이 올해처럼 화려한 철쭉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은퇴자의 시간보내기는

마당만큼 좋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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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야기>

성냥갑같은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단독주택으로 주거를 옮긴지 십칠팔년 되었을까요 ?

처음엔 직장으로의 출퇴근 거리때문에

그리고 아파트단지내 극성스런 아낙들의 이바구가 싫은 집사람의 성화때문에

단독주택을 알아보게 되었고,

우연한 인연으로 인왕산자락 높은지대에 자리한

마당 넓은 꽤 규모있는 단독 1층에 약 칠팔년을 전세로 살았었네요.

 

서울 도심 평지에 있는 단독주택은 앞뒤가 꽉막혀

조망이 거의 좋지 않은데다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가깝하기까지 함에 반해

산지 경사면에 있는 주택들은

앞뒷집간의 거리도 어느 정도 확보되고

대부분 매우 훌륭한 조망권이 확보되는 곳들이 많답니다.

 

사실 비탈진 경사면을 오르내려야 하는 고지대의 주택은

급경사의 도로여건을 접하는 순간 진출입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죠.

그러나 전면이 탁트인 경사지의 단독주택에서 살아본 나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아파트나 평지의 주택으로 옮기는 것은

거의 질식할 것 같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답니다.

비싼 대형주택단지인 평창동은 엄두를 낼 수조차 없어서

인왕산, 안산, 북악산 자락 주변의

옥인동, 청운동, 부암동, 홍지동, 신영동, 구기동 등을 훑기를 몇달

마침내 십여년전 지금의 집을 갖게 되었답니다.

 

서울 시내 아파트 절반 가격으로 마련한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

 

서울 시내 도심과의 평균 온도차이 섭씨 4, 5도

 웬만한 열대야에도 에어컨이 필요없는 동네

2~30분 산책만으로도

백사실계곡, 북악산, 인왕산, 북한산에 닿을 수 있는 동네

비록 학군으로 인해 가치가 저평가된 동네지만

자연과 더불어 깨어나고, 하루를 보내고, 잠들 수 있는 동네

우리 동네가 너무도 좋습니다.

계속된 장맛비로 무성하게 자란 잔디를 깎아

크롭서클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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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깊은 집은 구수한 얘기거리들이 넘친다.

하루 종일 맴돌던 바람이 구석구석 남기고 간 얘기들.

 

마당은 소통의 장이다.

 

수 많은 철쭉꽃 송이와 가지 사이사이마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감나무 새순 끝에,

심지어 담장을 기어 오르는 담쟁이 덩굴 줄기에도, 

 

밤새 해도 못다 할 얘기들이 마당에 널려 있다.

 

불개미보다 작은 개미자리가 오늘 꽃을 피웠네 !

내일쯤은 벼룩만한 벼룩나물 꽃을 볼수 있겠지 ?

산괴불주머니는 괴춤이 너무 많아서 뽑아 버려야겠네 !

철쭉은 너무 인위적이지 않게 전정을 해주면 좋겠어.

 

주간회의 시간에 맞춘 이른 새벽 출근에도

늦은 밤 아무리 몸을 가눌 수 없는 술자릿길 귀가에도

마당을 비집고 나온 대화의 꼬투리들은

시간을 모른다.

 

20여년을 부대끼고 비비며 살아온 생활 속에

매마르고 건조해진 가족간의 일상적인 대화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삐걱거리는 서로의 틈새에 기름이 되어줄

자연스러운 얘기거리가 마당에는 가득하다.

 

넘쳐나는 얘기거리는 장미꽃 담장을 타고 넘어

붉은 꽃잎처럼 흩날린다.

이웃들과의 인삿말은 골목에 흩뿌려진 꽃잎에서 시작하여

골목 끝에서야 비로서 끝난다.

 

말쑥하고 깨끗한 뉴타운, 재개발,

얘기가 머물 공간조차 없는 획일적인 아파트들만 들어서는 도시생활은

그래서 더욱 더 무미 건조하고 팍팍해진다.

 

단독주택이 좋다.

미운정, 고운정, 잔정이 오래 머물 수 있는

마당깊은 단독 주택이 좋다.

 

뉴타운 반대 !

주택재개발 반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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