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사랑채 앞에
아버님께서 가꾸시던 넓은 2단 화단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며
나무들이 때가 되면 꽃을 피웠고
이것을 보며 자란 나는
그것들이 내 잠재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아파트생활을 정리하고
단독주택에서 생활을 시작한 것은
어쩌면 그 잠재의식이 깨어난 탓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
땅에 대한 할아버님의 평소 지론도 그랬었지만
그 속에 자라는 모든 것을 사랑하셨던
아버지의 영향도 그랬었다.
이 집에 이사 온 이후
꽃들을 사서 심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우리집 마당에서 살아 있거나
한 때 살았던 것들까지 합치면
무려 300여종이나 된다.
그러니 좁은 마당은 무질서하고
그 무질서함 속에
살만한 것들은 이제 거의 자리를 잡았다.
나무들은 어쩔 수 없이 붙박이지만
여러해살이풀들은 계속 바뀌어갈 것이다.
이제 꽃이 진 철쭉 전정해야 한다.
작년에 하지 않았으니
올해는 강전정을 할 수밖에 없다.
내년에는 철쭉이 올해처럼 화려한 철쭉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은퇴자의 시간보내기는
마당만큼 좋은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