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마당이야기

가루라 2021. 5. 17. 01:19

어린 시절 사랑채 앞에

아버님께서 가꾸시던 넓은 2단 화단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며

나무들이 때가 되면 꽃을 피웠고

이것을 보며 자란 나는

그것들이 내 잠재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아파트생활을 정리하고

단독주택에서 생활을 시작한 것은

어쩌면 그 잠재의식이 깨어난 탓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

땅에 대한 할아버님의 평소 지론도 그랬었지만

그 속에 자라는 모든 것을 사랑하셨던

아버지의 영향도 그랬었다.

이 집에 이사 온 이후

꽃들을 사서 심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우리집 마당에서 살아 있거나

한 때 살았던 것들까지 합치면

무려 300여종이나 된다.

그러니 좁은 마당은 무질서하고

그 무질서함 속에

살만한 것들은 이제 거의 자리를 잡았다.

나무들은 어쩔 수 없이 붙박이지만

여러해살이풀들은 계속 바뀌어갈 것이다.

이제 꽃이 진 철쭉 전정해야 한다.

작년에 하지 않았으니

올해는 강전정을 할 수밖에 없다.

내년에는 철쭉이 올해처럼 화려한 철쭉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은퇴자의 시간보내기는

마당만큼 좋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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