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구름이 좋아 보이던 날
아름다운 석양을 기대하며
인왕산을 올랐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듯 추운 바람이
두꺼운 장갑 속을 날카로운 바늘처럼 파고들어도
온전히 노출된 뺨보다는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최면을 걸면서 기다렸지만
대부분의 날 그랬었듯 좋은 그림을 얻기 힘들다.
그래서 작가들은
기를 쓰고 그 먼 소문난 명소를 찾나 보다.
그러나 석양의 명소로 소문난 곳의 사진은
내게는 말 그대로 벽걸이 속의 사진일 뿐
도심 속 가까이 생활터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석양이
살아 있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은 게다.
현직에 있을 때는 쳐다볼 시간조차 없었던 그 석양이
이제야 눈에 들어와서 마음에 자리 잡는 것은
내 인생이 석양에 접어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매일같이 지는 태양이라도
볼 때마다 다른 감동을 줄 수 있으니
제발 지는 태양이라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자고
젊은 시절의 나에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