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사진/풍경사진

불갑산 꽃무릇 세상

가루라 2023. 11. 13. 18:21

지난 9월 생전 처음으로 가본 불갑산 꽃무릇축제

오랫동안 다음블로그에 올인했었지만

티스토리로 변한 환경이 왠지 낯선 데다

9월 초에 오래된 컴퓨터까지 고장 나서

마치 늙어가는 내 삶이 투영되는듯한 생각에

티스토리에 글 올리는 것을 중단했었다.

이러다가 문득 꽃무릇처럼

나 자신의 존재와 내 생각이

죽을 때까지 따로 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다시 티스토리를 열었다.

지금까지 산 날보다

남은 날들이 훨씬 적겠지만

그 짧은 기간에 적어도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다 갔는지

기록은 남겨야겠다 싶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집 작은방 모퉁이에도

지금쯤 아버님께서 심어 가꾸시던

꽃무릇이 만개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몇 송이 피어 있는 꽃무릇을 보는 것은

내게 그리 큰 관심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늘 그랬었듯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까지는

고향에 가는 길에

어디 딴 데를 들릴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바로 부모님께 갔었다.

그것이 부모님을 뵈러 가는 자식의 당연한 도리로 생각되었고

어른들도 그리 생각하셨었다.

그것이 지방 촌놈과 결혼한 서울 출신 아내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었지만

고맙게도 결혼 30년이 넘도록 아내도

거기에 대해 특별한 토를 달지 않았다.

작년 홀로 남은 어머님마저 떠나시고

벌초하러 내려가던 길에

평생 직선으로만 갔던 귀향길을

이번에는 다르게 가보고 싶었다.

고향집에 기다릴 사람도 없으니

마음도 가벼웠기도 하다.

그래서 찾았던 곳

영광 불갑산 꽃무릇축제

내려가던 시기가 고속도로변 제초작업시기와 맞물린 탓인지

고속도로가 아니라 저속도로라 짜증도 났다.

이렇게 밀리면 톨비를 감액해 주어야 맞는 게 아닌가?

늘 가던 천안논산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처음으로 서천공주고속도로로 바꿔 탔다.

불갑산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을 즈음

시간은 벌써 오후 3시가 넘었다.

논바닥을 메워 만든 그 넓은 여러 곳의 주차장은

그 시간까지도 꽉꽉 차 있다.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주차를 하고 일주문까지 걸어가는 도로변 양측에

활짝 핀 꽃무릇들이 하늘거리며 인사하는듯하다.

멀리서 고생하며 잘 왔다.

차분하게 잘 보고 가라는 듯 바람에 끄덕인다.

꽃송이에 비해 지나치게 가는 꽃줄기 탓일 게다.

드넓은 꽃무릇밭은 선운사에도 있다.

그보다 규모는 좀 작아도

호남고속도로 정읍 휴게소에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붉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숲 사이를 온통 덮고 있는 꽃무릇을 보는 것은 장관이다.

자세히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불갑사 경내와 뒷산 그리고 뒤편의 저수지 둑방까지

지금도 꽃무릇밭의 범위는 계속 확산되는 중인 것 같다.

지상의 잎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 꽃대가 솟아나서

꽃과 잎이 평생 만날 수 없으니

꽃말도 '이룰 수 없는 사랑'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사람이라고 '참사랑'이라는 꽃말도 있다.

숲만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할 만큼

꽃무릇 하나하나의 형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가는 관광객들

중국이 원산지인 꽃무릇은 석산이라 부르고

꽃과 잎이 서로 만날 수 없다고 상사화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국명으로 상사화라 부르는 것은

생태는 같지만 다른 꽃이고

꽃무릇의 국명은 석산이다.

잎이 지고 난 후 길이 30~50cm의 꽃줄기가

비늘줄기에서 나와서

그 끝에 산형꽃차례로 9~10월에 붉은 꽃이 핀다.

6개의 화피 조각은 거꾸로 세운 바소꼴로 뒤로 말리고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주름이 있다.

6개의 수술은 꽃 밖으로 길게 나온다.

아버님 떠나신 후

고향집에서 비늘줄기 몇 개를 캐내어

마당에 심었었다.

그러나 꽃말이 주는 좋지 않은 느낌 때문에

울타리 안에 심는 것이 불편해서

결국 파서 버렸었다.

텅 빈 고향집 꽃밭에는

주인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꽃무릇만이 무성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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