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행차/국내명소

하늘공원 억새밭

가루라 2011. 11. 14. 00:50

억새가 좋다는 하늘공원을 찾아 나섰습니다.

"아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되는 고복수님의 짝사랑이라는 노래가

귀에 익은 나이입니다.

학창시절 이때쯤 두부김치에 막걸리사발을 놓고

젓가락 장단에 맞춰

목 놓아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죠.

가을밤에 짝을 잃고 청승맞게 울어대는 새로만 알고

구성지게 부르던 이름 "으악새"

그 으악새가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라

들풀인 억새를 지칭하는 것이었다는 걸

하늘공원 억새밭에서 알았네요.   

자유로에서 하늘중앙문쪽으로 우회전하여

노을공원입구 주차장에 차를 댑니다.

노견과 안전지대에 주차한 많은 차들을 부러워했더니

주차관리인 말로는 불법주차 딱지를 떼거나 견인당하는 것 보다는

맘 편하게 주차장에 대고 다녀 오랩니다.

차를 대놓고 나와서 하늘공원쪽으로 향합니다.

쓰레기로 만들어진 산을 오르는 계단이 꽤 높습니다.

쓰레기가 산을 이룬다더니

쓰레기더미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산이 주는 위압감에

인간이 배출하는 잔재들이 우리의 먼 인류에 어떻게 작용할지 걱정됩니다.  

 땅속에서 배출되는 가스를 이용한 지역난방공사건물이 리사이클링의 성공사례처럼 의연히 서있습니다.

나무로된 계단을 오르자 서울억새축제를 알리는 초롱들이 연처럼 걸려 있구요. 

 삼분의이쯤 올라 뒤돌아보니 주차된 차량이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로 높습니다.

정상에 올라서자 탁트인 끝이 아스라히 보이는 길이 이어집니다.

완전하게 억새로 뒤덮인 이 공원을 보고

쓰레기를 잔뜩 싣고 개미처럼 끊임없이 드나들었던 덤프트럭의 행렬을 눈에 그릴 수 있을까요.

하늘을 향해 하얀손수건을 흔드는 것처럼 한들거리는 억새들이 한창입니다.

억새숲에서 혼자서 외로이 으악새소리를 즐기는 꼬마숙녀를 만납니다.

사실은 엄마아빠한테 삐져 혼자 앞서는 얘지만

어른 키를 훌쩍 넘는 억새밭 사이를 혼자 걷는 아이를 보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나네요.

 

나병환자들이 많았던 60년대에

어른들은 우리들에게 거짓부렁을 놓곤 했었습니다.

억새처럼 키카 컷던 보리밭 고랑사이에 문둥이들이 숨어 있다가

나병을 나으려 혼자 나온 어린아이를 잡아 먹는다고

혼자 나다니지 말라고....

이런 상황들이 옛날의 추억에 겹쳐지는 건 나이를 먹어가는 탓일까요

무리지어 억새를 담는 진사님들도 꽤나 많이 눈에 띱니다. 

 억새와 파란 하늘을 보니

갈대가 한창이던 산꼭대기까지 선착순하던 하사관학교 훈련시절이 생각납니다.

첫번째 뺑뺑이에 어차피 선두에 설 수 없었던 훈병 친구들 몇몇이

키큰 갈대숲에 몸을 숨겼다가

두세번째 선착순 중간에 끼어들던 기억

이 가을의 끝에서 만나는 갈대에 그런 아스라한 기억이 걸려 있다는 걸

평소에는 기억해내지 못했었네요.

 중앙쪽에 이르자 사통팔달로 내놓은 산책로들이 시원하게 뚫려 있습니다.

 붉그스레한 갈대잎과 줄기, 하얀 갈대의 홀씨가

순광속에 멋스럽게 어울립니다.

 가덕(싸리나 대나무로 만든 병아리 따위를 가두어 기르는 반구형의 망태. 표준어 어리)처럼 생긴

전망대에 올라선 사람들

전망대에서 억새밭을 내려다 보면

바람결에 따라 한방향으로 일제히 몸을 눕히는 장관을 볼 수 가 있습니다. 

억새축제 기간이라 다들 투명한 미래를 기원하며

셀로판지에 소원을 적어 주렁주렁 매달아 놓습니다.

나도 갈대를 닮은 삶을 희구하며

몇자 적어 걸어 둡니다.

"바람에 휘날리되 부러지지 않고

가을볕에 노랗게 물들되 썩지 않는

억새처럼 질기고 강건한 삶이 되소서" 

으악새 소리가 정말 들리는지 확인하려 다시 억새 속으로 들어 갑니다. 

 하얀 억새꽃이 역광을 받아 황금빛으로 변합니다.

 하얀 억새밭에도 검은 그림자가 질무렵

해는 어느덧 긴 그림자를 끌고 억새끝에 눕습니다.  

 어스름이 내려앉는 광장에는 밤을 잊은 이들을 위한 작은공연이 시작되고

 도심은 벌써 환하게 불을 밝혔습니다.

성산대교와 여의도쪽 한강풍경입니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목동쪽 마천루에도 불들이 켜지고

 멀리 남산타워의 불빛이 점점 춥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여의도를 줌으로 당겨 담았습니다.

더 이상 야경에 집착할 수 없을 만큼 추위가 엄습하여

너무 얇게 입고 나온 겉옷을 탓하며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억새밭 너머로 담은 사진 몇장을 파노라마로 붙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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