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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한재골 하늘마루정원에서

가루라 2019. 6. 25. 23:27

담양에서 가볼만한 곳, 정원이 아름다운 카페

몇년동안 별렀던 한재골 하늘마루정원을 찾았습니다.

하늘마루정원은 오랜 시간 병원에서 근무했던 고교동창이

은퇴 후 부부의 역할을 서로 바꾸어 운영하는 찻집입니다.

그 동안 가사일만 했던 부인은 사업장으로, 친구는 전업주부로.

그러면서 정원을 가꾸는 것은 공동으로 하는 제2의 삶터.

한국의 100대정원 중 하나로 수록되기도 했다는데

애초부터 찻집을 할 생각으로 지은 것은 아니었다네요.

은퇴 후 정원을 가꾸며 소일할 별장처럼 쓰기 위해 지었는데

찾아오는 지인들을 위해 차를 내어주다보니

찻맛에 빠진 분들의 찻집을 한번 해보는게 어떠냐는 유혹으로

쉽지 않은 일을 시작했다지요.

말수가 별로 없어서 처음에는 좀 힘들었지만

요즈음 살맛이 난다는 친구의 부인.

그 덕에 요리하는 남자가 되었다는 친구.

주인장인 친구와는 고교시절 같은 반이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고

말 한마디 서로 건네 본 적 없었던 동창이었습니다.

친구가 페북에 올린 하늘마루정원의 사진과 글을 보고

서로 동창이었음을 알고서 페친이 된 것이 7, 8년 전쯤이었나요.

정원과 화초에 대한 관심이 고등학교 졸업 후 근 오십년이 다 되어서야

서로를 사이버공간상에서 오래 알고 지낸 친구로 인식하게 만든 것이지요.

담양에 가면 꽃들이 만발한 오뉴월의 하늘마루정원은 물론

하얀 눈 덮힌 사진마저

암울한 요양원의 풍경에 짓눌렸던 저의 마음을 지워줄 것만 같았습니다.

그 사이 한두달에 한번씩 어머님을 뵙기 위해 담양에 갔었지만

갈수록 노쇠해져만 가는 모습에 시선과 마음을 둘 데가 없어

요양원만 들러 도망치듯 되돌아오곤 했었지요.

마치 불효의 심정을 그곳에만 떨궈두고 빠져 나오는듯이...

친구는 제가 동창회 카페와 페북에 올렸던 글과 사진들을 보았던 터라

얼굴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도

한번 들러보고 싶다는 저의 청언에 흔쾌히 아무때든 오라했었네요.

그래도 어머님을 요양원에 모셔두고

어떻게 우리만 놀러다니듯 갈 수 있느냐는 집사람이나

마음에 편하지 않는 구석이 있는 나도 생각뿐

그 곳을 향하는 발걸음을 쉽게 뗄 수가 없었지요.

그러던 중 오월말 응급상황으로 병원 중환자실로 후송된 어머님

일주일 이상을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느라 광주 동생집에 체류하던 중

보호자로써 결정해야 할 선택지 세가지를 의사로부터 받아들고

동생들은 물론 나조차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 직면했었습니다. 

아직도 병원에 근무하는 친구들 몇명을 만나 의견도 들어보고

병원에서 근무했던 그 친구의 자문도 받을 겸

중환자실의 낮시간 면회 후 저녁시간 면회까지의 대기시간에

하늘마루정원을 찾은 것이지요.

꽃이 주렁주렁 달린 거의 교목 수준의 때죽나무와

하얀 마가렛이 좌우를 가득 메운 숨겨진 길 같은 입구를 지나니

탁 트인 마당 정면에 아담한 통나무집처럼 자리잡은 나즈막한 건물과

주변 산봉우리와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모양과 색상의 파라솔이 시선을 끌어 당깁니다.

4,700평의 부지를 최대한 자연 그대로 유지하려

원래 산지에 있던 나무와 바위들은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원형을 유지했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무리지어 핀 하얀 마가렛과 노란 금계국들이

주변과 한데 어울려 별유천지로 느껴지게 만드네요.

고등학교 졸업 후 거의 오십년만에 처음 보는 얼굴

어쩌면 둘 다 서로 생경한 얼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고교시절에도 반이 틀려 말 한마디 건내지 않던 동창이었으니 말이지요.

오며 가며 한번쯤은 눈길이 스치기라도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마치 엊그제 헤어졌다 만나는 오랜 친구처럼

서로를 끌어 안고 반가운 해후를 즐겼네요.

꽃을 가꾸고, 나무를 아끼는

사전 교감으로 얼굴에 대한 낯설음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고

친구의 부인은 꽃이 수놓아진 보자기에 쌓인 찻주전자를 들고 와서는

"특별히 주문을 받지 않았지만 마음이 평온해지고 심신이 따뜻해지는 홍차"라며

주인장의 선택에 맡겨달라 하네요.

리필을 예상하고 보온이 될 수 있도록 보자기에 감싼 찻주전자

유럽 여행중 하나 하나 사서 모았다는 찻잔과 접시에

향기가 가슴 깊이 내려 앉는 달콤한 홍차를 한 잔 따라 줍니다.

담당의사는 권하고 싶지 않다 했지만

환자가 고통스럽다는 L-tube를 할지 말지 자문을 구하는 것은

친구를 만나기 전에 이미 보호자의 선택의 문제라는 귀결점이 예정되었던 문제였고

어쩌면 스스로 결론을 정해 놓고 마음을 위안할 명분을 찾기 위해

이름도 상황에 걸맞는 하늘마루정원을 찾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친구의 이야기도 저와 생각이 같을 수 밖에요.

리필된 차까지 연거푸 두 잔을 마신 후

집사람을 생면부지의 친구 부인과 남겨두고

친구와 함께 정원 여기 저기를 둘러 봅니다.

돌아갈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계곡 아래까지는 내려가보지 못한 게 아쉽네요.

담양 병풍산 아래에 있는 한재골은

사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물맞으러 몇번 왔던 친숙한 곳입니다.

벌써 60년이 다되는 세월이 흘렀으니

그 사이 모두가 변해버려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도 없지만

옛날 어른들은 여름이면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을 찾아

온몸에 떨어지는 폭포수로 물마사지를 하거나

백중날이면 영산강 상류의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곤 했었지요.

변변한 의료기기가 없었던 당시에

물맞기와 모래찜은 서민 아녀자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법이기도 했었습니다.

한동안 대형목욕탕에 월풀욕조와 천장에서 떨어지는 폭포사우나가 유행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모두가 자연에서 배웠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바탕을 둔 것들이었지요.

정원 여기저기를 돌아보는 내내

귀향을 꿈꾸며

지금도 비어 있는 시골집을 이렇게 가꾸려 했던 생각을

접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우리집 꽃은 하나 하나를 매크로로 보는 것이지만

무더기로 심어 군생으로 보는 이 곳은 풍경으로 보는 것이지요.

군생으로 화초를 키우기에는 너무 좁아서

여러 종을 한두포기씩 심어두고 볼 수 밖에 없는 서울집 마당이

때로는 아쉽습니다.

그래도 문빔이나 샤스타데이지, 금계국은

좁은 마당에서 적은 개체로도 그런대로 군생처럼 보여서 좋기도 하지만요.

어린시절 화단을 가꾸셨던 아버님의 영향 덕분이었는지

나이들어 가면서, 정확히는 은퇴한 후였지만

화초를 마음껏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전원생활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 부부의 하늘마루정원은

대리만족을 이룰 힐링의 장소가 되었지 싶습니다.

아래 사진의 계곡 가운데 멀리 보이는 고향집이

평야지대가 아니고 이런 산지였다면 귀향을 했을텐데.

어쩌면 평소에도 마당의 초화류식물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우리 부부를 처음 만난 친구의 부인도

마치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 없이 우리 부부를 대해주니

더욱 더 편안해지는 마음으로 대기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전날밤 중환자실에서 어머님 면회 중

예기치 않게 옆 침상 할머니의 임종을 마주했던

생애 마지막 충격적 상황에 몸과 마음이 모두 무거웠었지만

심신을 따뜻하고 차분하게 해주는 차와

친구 부부의 위로

그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원 속에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이겠지만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서 보면

양쪽에 흘러내리는 능선 사이 계곡 멀리로

고향집이 멀리 어슴프레하게 보이는 장소에 자리잡았네요.

그것은 제 어린시절과 활기 넘쳤던 어머님의 젊은 시절을

상상으로나마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지요.

숲, 그것도 꽃이 가득한 숲정원에서면

현실의 고민들이 다 녹아 없어지는듯 합니다.

그래서 늘 이시형박사님도 숲의 치유능력을 제게도 말씀해주셨고

실제로 선마을에서 치유효과를 실증하고 계시기도 하지요.

친구에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숲의 치유능력을 믿는다.

이 곳에 오는 모든 손님들에게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보기 바란다.

물론 차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이 곳 풍광과 공기 그리고 향기 속에 모든 것을 스스로 내려 놓고

치유의 효과를 누려보라고

실내 인테리어도 안주인의 취향에 맞게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게 꾸며져 있어 좋았지만

특별히 정원이 아름다운 하늘마루정원

치유의 숲이 계곡까지 연결 되어 있는 하늘마루가 더 좋습니다.

친구 부인이 이 글을 보면 서운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자연이 더 좋아서

두 사람이 자연과 어우러지게 가꾼 정원 사진으로 애정을 표한다는 것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처음 보았지만 얘기가 통할 수 있는 상대라고 인정해주셨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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