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행차/국내명소

담양 미암박물관

가루라 2019. 7. 25. 00:26

광주에 갔던 길, 자투리 시간에 방문한

미암 유희춘(眉巖 柳希春 1513~1577))의 사당과 박물관.

미암사당과 미암박물관은 광주에서 승용차로 25분 정도 거리인

전남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에 있습니다.

미암은 조선 선조 초기의 명신으로 인정받는 문인으로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 별호는 연계(漣溪)

그리고 선조로부터 하사된 시호는 충절공(忠節公)입니다.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였다가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귀양 후 함경북도 종성에 적배되었다가

선조 즉위 후 해배되어 재등용되었지요.

대사성, 대사간, 대사헌과 홍문관 부제학을 지내고

예조, 형조, 이조참판을 역임한 후 사직, 낙향하였습니다. 

고봉 기대승, 하서 김인후와 함께 호남삼현(湖南三賢)으로

경사와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유림의 추존을 받는 대학자입니다.

인종이 세자 때 인종의 학문 도양을 도왔고

선조도 왕위에 오르기 전 미암에게서 학문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미암의 사후에 선조 때 사액된 담양의 의암서원(義巖書院)과 무장의 충현사,

그리고 함북 종성의 종산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사료적 가치가 큰 미암일기, 속몽구(續蒙求), 역대요록, 주자어류전해 등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임란을 거치면서 거의 산일되었습니다.

그의 일대기와 유품들은 오른쪽에 있는 건물 모현관(慕賢館)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선산 유씨 종택 안 동북편에 있는 미암사당은

1600년도 초에 건축된 목조건물로 건축양식과 벽화의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 받아

2001년 9월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거주공간 안에 자리잡은 사당을 방문하는 것은

더운 날씨에 민폐가 될 것 같아서 들어가보지 못하고

후손들이 2017년에 세운 미암박물관과 연계정(漣溪亭),

그리고 장동지만 보고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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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박물관

미암박물관

미암박물관

다각집에 누마루를 만들어 놓은 체험관으로 쓰는 모현관 좌측에 있는 배근당(培根堂) 뒷마당입니다.

뒷마당 쪽에는 달리 쓰여진 편액이 걸려있네요.

어린시절 우리집 사랑채의 솟을대문이 생각나게 합니다.

모현당 우측에 맛뱃집으로 지어진 건물에는

달지당(達枝堂)이라고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안내도에는 표시가 없어서 아쉽게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문학사에 최초 개인문집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미암의 부인 덕봉(德峰) 송종개(宋種介)의 자료실을 별도로 두었네요.

덕봉은 허난설은이나 신사임당처럼 세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찌기 사서와 경서를 두루 섭렵하고 문학적 재질을 드러내었던 여류문인입니다.

그녀는 한양에 벼슬을 살던 미암과 편지로 필담을 주고 받기도 하고

미암의 유배지를 찾아 삼천리길을 가면서 남긴 한시

마천령상음(磨天嶺上吟)이 모현관 마당의 시비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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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지당(達枝堂) 

덕봉도서관

달지당과 모현관

미암의 일대기와 자료를 전시해 놓은 모현관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남여(藍輿)에 앉은 미암>

미암 유희춘의 일대기 연감

미암관련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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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동 

학맥도 

하서선생집 

미암일기 

미아먼생집 목판 

이 외에도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덕봉 송종개의 한시비(漢詩碑)의 각자를 옮겨 봅니다.

마천령상음(磨天嶺上吟) : 마천령 위에서

행행수지마천령(行行遂至磨天嶺) : 걷고 또 걸어 마천령에 이르니

동해무애경면평(東海無厓涯鏡面平) : 동해가 평평한 거울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구나

만리부인하사도(萬里婦人何事到) : 부인의 몸으로 만리길을 어이 왔는고

삼종의중일신경(三從義重一身輕) : 삼종의 도 무겁고 이 한 몸 가벼운 것을

이 시는 미암이 함경도 종성에 유배되어 있을 때

그 곳을 찾아가며 쓴 시라네요.

미암박물관 표지석과 박물관 안내도입니다.

안내도는 건축 초기계획서를 바탕으로 그렸는지

아쉽게 실제와는 조금 다르네요.

미암박물관 표지석 

미암박물관 안내도 

박물관 건너편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정자 연계정(漣溪亭)입니다.

미암은 자신의 별호를 딴 이 정자에서 후학들을 양성하였다네요.

수령이 약 450년으로 추정되는 보호수인 느티나무 두 그루 외에도

수령이 제법 되어 보이는 나무들, 그리고 계곡 앞쪽에 커다란 이팝나무가

팔작지붕 형태의 정자의 운치를 더해 줍니다.

정자 아래에 있는 장동 마을회관과 거대한 이팝나무

연계정에서 주변을 둘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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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정

연계정에서 본 장동지

박물관의 배근당

연계정이라는 이름으로 유추해 볼 때

상류의 노리봉 골짜기 장산3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예전에는 더 깊고 수량이 많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연계정에서 본 박물관입니다.

연계정 아래에는 계곡물을 끌어들여 만든 작은 못 장동지(獐洞池)가 있습니다.

못 안쪽에 작은 섬을 만들고 다리를 놓아

주로 가족 행사에 쓰는 현대식 건물인 모현관을 지어 놓았습니다.

장동지(獐洞池) 수면에 비친 풍경들을 담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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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지

장동지

장동지

장동지

장동지 윗쪽에 선산유씨 종택과 미암 사당이 있습니다.

입구에는 멋들어진 글씨체로 선산세가(善山世家)라고 각자된 표지석이

신선이 되는 나무라고 알려진 측백나무를 배경으로 준엄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장동지에 비친 수변 풍경도 아름답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수변 풍경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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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지의 반영

장동지의 반영

장동지의 반영

연계정 주변과 좌측 거목을 타고오르는 백화등과

장동지 제방 석축 사이의 백화등도 한창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시기입니다.

연못을 돌아 나오는 길에 다시 돌아본 연계정은 역시 풍치가 좋습니다.

낙향하거나 고향에 은거한 조선의 선비들은

하나같이 산천경계가 좋은 곳에 정자를 만들어 놓고

양반들만의 풍류와 학문을 즐겼나 봅니다.

어쩌면 그들의 일상의 중심이었던 성리학이 조선의 왕권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조선을 병들어 망하게 하지 않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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