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벌초

가루라 2019. 9. 3. 00:44

이러한 풍습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요?

해마다 이 맘 때면 벌초를 위해 고향을 찾습니다.

벌초행사는 그나마 숙질간, 사촌간이

일년에 한번은 서로 얼굴을 보며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자리지요.

일요일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요즈음 기상청의 예보가 적중율이 매우 높아졌다는 사실 외에도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에

토요일 행사를 취소하고

밀리는 고속도로에 차를 끌고 나갔습니다.

일요일 오전에 동생과 숙부님들까지 합세하여 벌초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나니

빗발이 들기 시작하네요.

다행히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앞으로는 벌초하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대리석으로 조성하는 가족묘원 공사를 발주해 놓으셨던 덕분에

윗대 선조들은 모두 그 해에 가족묘원에 모셨고

재작년 조부모님까지 이장했었습니다.

그 덕분에 실제 벌초를 해야 하는 묘역은

아버님 묘소뿐이었고

가족묘원은 묘역주변의 잡풀만 제거하는 간단한 일이 되었습니다.

가족묘원에는 저희 부부의 자리까지 만들어 놓았지만

그 자리에 가는 것도 고민입니다.

아들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니

제 고향에 딱히 연고도 없으니 만큼

멀리까지 내려가 성묘하라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을 테지요.

아버님대는 물론 저까지는 형제가 제법 되니

제사도 동집사, 서집사 두고 축문 읽어가며 모시겠지만

아들 하나에 사촌들도 대부분 지방에 사는 터에

제사봉사조차 언제까지 지속할지 모르는 세태입니다.

벌초도 아버님까지 이장하고 나면

벌초라는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살필 성(省)'에 '무덤 묘(墓)'를 쓰는 성묘의 의미도 퇴색되어

사전에서나 찾을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칠십도 못 넘긴 세월에

벌써 사전 속으로 물러 앉은 우리의 풍속들.

아쉬운 추억입니다. 

'좋은 글 > 세상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난티CC에서  (0) 2019.11.02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  (0) 2019.09.12
빛 좋은 개살구  (0) 2019.06.20
우후죽순  (0) 2019.06.19
어머니와 매실나무  (0) 2019.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