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어머니와 매실나무

가루라 2019. 6. 4. 23:51

고향집에서 잘 길러내신 묘목을 어머님께서 주신지 벌써 십년

서울 우리 집 담장 밑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도 5년째되었습니다.

삼년 전 한 대접을 따낸 이후

개화기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서울의 냉해로

그 동안 매실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오상고절에 피는 세한삼우 중 하나인 매화도

매실로 북방한계선을 넘기는 힘들었나 봅니다.

여느 해처럼 올해도 많은 꽃을 피웠지만

다행히도 꽃샘 추위가 약했던 덕분인지

유난히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유실수가 유난히 열매를 많이 맺으면 죽는다는 속설

서울에서 매실나무는 매화나무로만 존치되어야 할까요?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기간

그 사이 어머님은 중환자실로 가셔야 할 정도로 쇠잔해지셨고

마침내 응급상황이라는 연락을 받고 쫓아 내려가야 했습니다.

바로 옆 병상의 할머님의 임종을 속절없이 지켜보며

힘내서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안되는 얘기를

어머님 귀에 수차례 속삭였지만

그럴 일이 없다는 게 더욱 안타깝지요.

그래도 8일만에 조금은 안정되신 듯하다는 의사의 진단과

귀경해야만 하는 다른 사정으로 떨어지는 않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8일만에 돌아온 집

어머님께서 주신 매실나무는

예전과 다르게 튼실하고 굵은 많은 열매를 맺었지만

차마 매실을 따자는 얘기를 서로 못하는 아내와 나

매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마치 어머님의 정처럼 여겨져서

매실을 따내면 그 정이 끊길 것 같다네요.

무릇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그 끝이 정해져 있지만

정해져 있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나약한 인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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