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겼습니다.
올해는 단감나무의 큰 가지 몇개를 잘라내어서
작년보다는 감도 덜 달렸었습니다.
게다가 작년에는 감따는 시기를 놓쳤다가
달린 채 얼어버려서 수백개의 감을 따지 않고 그대로 두었더니
이른 봄까지 새들의 먹이터가 되었었지요.
그래서 흔한 까치와 직박구리, 참새, 박새, 쇠박새는 물론
물까치도 떼로 몰려오곤 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서울 도심 주택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진객인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쇠딱따구리까지
겨우내 새구경을 하다가 봄을 맞았습니다.
올해는 얼마 안 되는 감을 따내면서
한 스무개쯤 까치밥으로 남겼었지요.
무리지어 생활하는 까치도
먹이활동을 할 때는 한두마리만 찾아오는데
물까치는 얼마 남지 않은 까치밥에 떼로 몰려 옵니다.
잘 익은 감 속살을 덩치 큰 놈들이 한 입 떼어물면
참새나 박새, 쇠박새가
적어도 열마리 이상이 먹을만한 양이나 됩니다.
이 놈들은 주저함도 없이 한 입에 삼켜버립니다.
게다가 물까치보다 체구가 더 큰 까치도
한두마리가 와서 한 입씩 베어 먹고 날아가는데
예닐곱마리씩 찾아온 물까치는
먹고 또 먹고 계속 파먹다가 갑니다.
그렇다고 작은 새들을 위해
이 놈들을 쫓아버리고도 싶지만
쫓아봐야 그 때뿐임을 알기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작년처럼 남겨놓은 까치밥이 많기라도 하면
그나마 덜할 텐데
스무개쯤 남겼던 감은 금새 껍질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물까치처럼 크게 한 입 떼어 먹어도
혼자 찾아오는 까치는 그나마 덜 밉기라도 하네요.
덩치 큰 까치, 물까치들이 떠난 뒤
껍질에 붙어 있는 나머지 감이라도 먹으려는
참새와 쇠박새가 안쓰럽습니다.
인간 세상의 먹거리도 그렇지요.
손이 작은 개미들이 주식시장에 굴러봐야
그들이 먹은 것은
큰 손들이 굴려서 얻는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할 것입니다.
누구는 그것이 자본주의의 몰락을 보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임에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작은 것들은 작게 먹고
영원히 작은 것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말입니다.
아름다운 오색딱따구리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지
마당의 감나무를 외면하고
울 밖에 있는 아카시나무 껍질을 쪼고 있네요.
크리스마스에는 작은 것들에게도
큰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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