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까치밥과 탐욕스러운 물까치

가루라 2019. 12. 25. 01:42

마당의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겼습니다.

올해는 단감나무의 큰 가지 몇개를 잘라내어서

작년보다는 감도 덜 달렸었습니다.

게다가 작년에는 감따는 시기를 놓쳤다가

달린 채 얼어버려서 수백개의 감을 따지 않고 그대로 두었더니

이른 봄까지 새들의 먹이터가 되었었지요.

그래서 흔한 까치와 직박구리, 참새, 박새, 쇠박새는 물론

물까치도 떼로 몰려오곤 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서울 도심 주택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진객인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쇠딱따구리까지

겨우내 새구경을 하다가 봄을 맞았습니다.

올해는 얼마 안 되는 감을 따내면서

한 스무개쯤 까치밥으로 남겼었지요.

무리지어 생활하는 까치도

먹이활동을 할 때는 한두마리만 찾아오는데

물까치는 얼마 남지 않은 까치밥에 떼로 몰려 옵니다.

잘 익은 감 속살을 덩치 큰 놈들이 한 입 떼어물면

참새나 박새, 쇠박새가

적어도 열마리 이상이 먹을만한 양이나 됩니다.

이 놈들은 주저함도 없이 한 입에 삼켜버립니다.

게다가 물까치보다 체구가 더 큰 까치도

한두마리가 와서 한 입씩 베어 먹고 날아가는데

예닐곱마리씩 찾아온 물까치는

먹고 또 먹고 계속 파먹다가 갑니다.

그렇다고 작은 새들을 위해

이 놈들을 쫓아버리고도 싶지만

쫓아봐야 그 때뿐임을 알기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작년처럼 남겨놓은 까치밥이 많기라도 하면

그나마 덜할 텐데

스무개쯤 남겼던 감은 금새 껍질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물까치처럼 크게 한 입 떼어 먹어도

혼자 찾아오는 까치는 그나마 덜 밉기라도 하네요.

덩치 큰 까치, 물까치들이 떠난 뒤

껍질에 붙어 있는 나머지 감이라도 먹으려는

참새와 쇠박새가 안쓰럽습니다.

인간 세상의 먹거리도 그렇지요.

손이 작은 개미들이 주식시장에 굴러봐야

그들이 먹은 것은

큰 손들이 굴려서 얻는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할 것입니다.

누구는 그것이 자본주의의 몰락을 보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임에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작은 것들은 작게 먹고

영원히 작은 것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말입니다.

아름다운 오색딱따구리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지

마당의 감나무를 외면하고

울 밖에 있는 아카시나무 껍질을 쪼고 있네요.

크리스마스에는 작은 것들에게도

큰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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