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홍제천 버들강아지도 피었는데...

가루라 2020. 3. 5. 00:45

인위적으로 물을 끌어와 복원한 도심하천

그 홍제천에 봄이 왔다.

어린시절 산골짜기 계곡에서나 보던

솜털 보송보송한 버들강아지.

곱게도 피었는데...

코로나19의 공포에 내몰린 사람들

이제 세기말적 행태를 보이기 시작한다.

서로를 물어 뜯고, 의심하고, 피하고,

당장의 필요와 관계없이 물건들을 사놓아야 안심하고...

 

때 되면 이렇게 곱게 피는 자연은 외면한 채

온통 당장의 불확실한 현실에 스스로 목을 매고 있지나 않은 지?

남을 배려하지 않는 무분별한 자가격리 대상자들의 외부활동.

요사스러운 종교도라 손가락질 받을까 더 무서워 감추고 숨는 몽매한 신도들.

불안한 심리에 편승해 매점매석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불량한 상인들.

끝없이 비난하고 욕해야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사라지는 걸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도심 속 하천까지 이렇게 왔는데.

 

이런 시기에 종교는 과연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믿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생각하게한다.

소위 하나님 또는 부처님의 말씀을 대신한다는 자들을 위해

자신이 말씀의 도구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결국 인간의 나약함에 빌붙어 살아가는 종교인의 허상을 보는듯

마음만 착찹해지는 요즈음.

 

퇴임 즈음 유행하던 단순하게 살아가기의 열풍에

이런저런 명분을 위해 현직에 있을 때 만들었던 모임들을 정리했었다.

물론 소득활동이 없어진 터에 모임 경비도 문제였겠지만

남의 말을 듣는 것도,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결국 나의 사고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라 여긴 탓도 있다.

현직에 있을 때 직책 상 불가피했던 조직 논리로 인해 초래 되었던 갈등관계가

퇴직으로 인해 사라진다는 사실이 좋기도 했었다.

 

그러나 은퇴 후 넘쳐나는 시간은

추억을 불러오는 종잣돈처럼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모임이 더 많아져 부담스러웠던 최근.

마침 불어닥친 전염병의 위협을 피해 모든 모임을 의도적으로 중단했다.

심지어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치룰 수 밖에 없는

예정된 지인들의 혼사까지도

시간대는 다르지만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는 ENT의 만성기침 치료경력때문에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송금으로 대신하고는

스스로 집안 유폐를 선택한지 한달째.

 

며칠 전에 맞은 아버님의 기제사조차

아이들은 물론 형제자매도 오지 못하도록 연락하고

집사람과 단둘이서 모시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제한된 움직임으로 확 찐 자는 되기 싫어

인적 드문 시간에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것 정도로

대외활동을 줄였으니

이런 내게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설 이유도 없다.

동네 약국에 전화번호를 남겨 놓고

내 차례가 되면 몇개 받아오면 되는 것.

냉장고 파먹기로 비어가는 냉장고는

동네 마트에 주문으로 조금씩 채워두었다.

 

의도치 않게 실천하고 있는 미니멀리즘.

박원순시장의 제안이 아니었어도

이미 나는 스스로 #사회적거리두기를 실행하고 있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나이 들어 면역력도 떨어진 나 자신을 위한 것.

그래도 한달째 못 만나는 손자들이 보고 싶지만

어찌되었든 금주말까지는 참아야겠다.

 

그 사이 턱밑까지 밀고 온 봄.

이 꽃샘 추위가 끝나고

홍제천의 버들강아지가 활짝 피면

귀여운 우리 강아지들도 환한 얼굴로 볼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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