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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실계곡의 여름

가루라 2020. 8. 16. 00:51

백사실계곡의 여름 풍경

급격한 도시화로 녹지와 맨땅이 사라지고

대지는 두꺼운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숨을 쉴 수 없게 된 오늘날.

비만 오면 도시의 도로는 물난리에 빠진다.

땅 속으로 흡수될 수 없는 물들은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을 따라 빠른 속도로 낮은 곳으로 모여들고

이내 하수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넘쳐 흐른다.

이 모든 것이 인간중심의 도시화에 따른 부작용이지만

인구 과밀에 따른 서울은 별다른 대안이 없다.

각급 학교운동장이나 도로 지하를 파서 우수저수탱크를 만들어 보지만

급격하게 늘어난 집중호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 도심 한복판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백사실계곡은

도시의 허파같은 곳이다.

아무리 많은 비가 쏟아져도

우수를 흡수할 수 있는 두꺼운 낙엽층이 있는 숲이 있다.

갈수기에는 깊이 품었던 물을 조금씩 쏟아내어

숲의 갈증을 해소해 준다.

선조들은 이미 숲의 이런 자정적 기능을 알았었던가 보다.

폭염 속에서도 신선한 냉기를 뿜어내는 숲 속에

운치있는 정자를 지어

시를 읊고 서화를 즐겼으니 말이다.

일설에는 백사 이항복의 별장터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전혀 다른 기록들이 확인되고 있다.

1935년 동아일보에 실렸던 연못가의 정자는 사라지고 주춧돌만 남았지만

백석동천의 별장은 추사 김정희의 선친 유당 김노경의 별서정원이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후대에 이 인근 주민들은 물론 도시인들에게

아주 유익한 산책지를 남겨주었다.

코로나의 만연으로 멀리 가지 못한 사람들의 방문이 급격히 늘었고

특히 반려견을 동반한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그러나 개가 그들 자신에게는 반려동물일지는 모르지만

개를 동반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언제 달려들지도 모르는 짐승일 뿐이다.

게다가 대형견에 입마개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그나마 그들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도 있다.

더욱 불쾌한 것은

견변처리봉지로 뒷처리를 하지도 않고 그대로 두거나

처리한 봉지를 숲속에 그대로 버리는 개만도 못한 者들을 보는 것이다.

긴 장마로 인해 다행히 그런 목꼴불견인 장면들은 줄었고

방문객들도 줄었지만

숲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물을 머금은 공기, 두꺼워진 이파리,

진해진 숲 특유의 냄새.

불어난 물로 인해

제법 모양새를 갖춘 작은 폭포들을 볼 수 있는 것도

한여름 장마철에 만날 수 있는 백사실 풍경이다.

올해는 몇십년만의 긴 장마와

엄청난 폭우로 인해

숲은 더욱 짙은 녹색으로 변했다.

계곡 속 바위는 물론

돌로 쌓아올린 축대까지도

진한 녹색의 이끼를 뒤집어 썼다.

계곡 출입을 통제하는 목책과

인위적인 석축만 아니라면

서울 한복판이 아니라 깊은 산의 어느 계곡 같다.

여느 해 여름보다 많아진 계곡의 수량.

백사실 별서터 연못 앞에 떨어지는 물줄기의 가닥도

더욱 하얗게 변했다.

계곡의 출입이 자유로웠던 13년전 여름이 생각난다.

비록 백사실계곡의 폭포라 하기에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여름이면 크고 작은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작은 폭포들의 아름다운 광경들을

계곡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계곡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서

사진으로 옮겨 올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문화재인 별서터로서의 백사실계곡이 아니라

자연유산인 도룡뇽의 서식지,

그리고 서울 도심의 허파 기능을 하는 숲.

시민들에게 청량한 공기를 주는 백사실계곡의 여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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