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사진/꽃사진

국화

가루라 2020. 12. 1. 00:45

#국화

11년 전에 갑자기 떠나신 아버님은

어린시절 내 기억에 손재주가 참 많으신 분이셨다.

진공관 앰프 전축을 손수 조립하셔서

지인들에게 재료값만 받고 선물하시기도 하셨고

근무하셨던 학교 화단의 꽃도 대부분

아버님께서 직접 재배하셨다.

시골집 마당 한켠에는

늘 삽목해 놓으신 모종판이 조성되어 있었고

마당 양지바른 곳에는

여름이면 커다란 구형선인장, 공작선인장, 손바닥선인장 등이

커다란 꽃들을 피웠었다.

빨간 꽃을 피우는 제라늄도 좋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 중에 제일 멋있어 보였던 것은

토방에 일렬로 늘어서서

커다란 얼굴로 가을을 풍성하게 장식했던

대국(大菊)이었다.

줄기 끝에 한 송이씩 커다란 꽃을 피우는 국화들.

일본 서적을 보시면서

손수 가꾸셨었다.

흰색, 노란색, 분홍, 빨강까지

화엽도 넓은 것과 실처럼 가느다란 것까지.

60년대에 국화 모종을 어디에서 어떻게 구하셨었는지는

너무 어려서 관심이 없었지만

그것이 아름답다는 것은 나이가 어렸어도 알았다.

아버님이 한없이 위대해 보였던 그 시절.

고향을 떠나 시내에 있는 학교로 전근하시면서

그 위대함을 잊고 살았지만

독립해서 내 집을 마련한 후에 생각해보니

대국에 대한 꿈은 잊지 않았었나 보다.

그러나 아버님처럼 꽃을 가꿀 수 있는 재능은 없고

전문서적을 탐독하지도 못했으니

가을이면 그저 화원에서 국화를 사오는 것에 그쳤을 뿐이었다.

그렇게 사날랐던 국화들을

꽃이 지면 봄에 마당에 심어두었다.

그렇게 마당의 한 식구가 되었던 아이들이

올해 다들 꽃을 활짝 피워서

올 가을 마당은 국화향이 가득했다.

노랑, 연분홍, 흰색까지.

국화와 구절초, 한라구절초에 야생 산국까지 뒤섞여

어느 것이 구절초고 어느 것이 국화인지조차

구분할 수조차 없었다.

마당 가득했던 그 향기 점점 스러지고

꽃도 하나 둘 시들어 갈 즈음

마당에도 서릿발이 섰다.

국화는 뿌리가 살아남아

내년에도 꽃을 볼 수 있겠지만

한 번 떠나신 분은 다시 오실 수 없다.

해마다 피는 국화처럼

기일에나 뵙기를 청해보지만

향로를 휘감돌던 향만 코에 스밀뿐...

그나마 남아계신 어머님마저

코로나로 인해 못 뵌지 일년이 되어 가는데

병원에서 전해주는 소식.

시들어 가는 국화꽃처럼

떠나 보내드릴 준비를 해야 하나보다.

저리 향기로웠던 국화가

매서운 찬바람 속에도 아직 채

다 시들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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