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름
어린 시절 고향 산에서 따먹었던 으름.
그 달콤한 맛을 잊지 못해
마당에 으름덩굴을 심어 담장 너머로 걸쳐 놓은지 5년째
작년에 열매가 없이 처음으로 꽃만 몇 송이 피더니
올해는 유래없이 많은 꽃이 피었다.
내심 많은 으름이 달려서
손자들에게도 추억의 조선바나나 으름을
맛보게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단 한 개만 달린 으름.
한 개 달린 열매가 커가는 것을 지켜보며
수확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침내 9월 30일 노랗게 익은 열매가
살짝 벌어져 달콤한 향기가 스며 나왔다.
다음날인 주말을 맞아 집에 올 손자들에게 보여주고
으름을 따려고 사진으로만 담았었다.
다음날 손자들이 온다는 연락을 받고 나가보니
아뿔싸!
나쁜 손모가지가 지나갔는지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허무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 도둑도 필시 으름의 맛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나처럼 그 추억을 잊지 못해 훔쳐간 것이겠지만
내게는 나의 추억을 훔쳐간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으름에 대한 추억을 공유한 사람이니
용서해야지 어쩔 것인가!
내년에는 더 많은 열매가 달려
그 도둑에게도 흔쾌히 나누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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