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추억의 으름 도둑

가루라 2022. 12. 13. 01:19

#으름

어린 시절 고향 산에서 따먹었던 으름.

그 달콤한 맛을 잊지 못해

마당에 으름덩굴을 심어 담장 너머로 걸쳐 놓은지 5년째

작년에 열매가 없이 처음으로 꽃만 몇 송이 피더니

올해는 유래없이 많은 꽃이 피었다.

내심 많은 으름이 달려서

손자들에게도 추억의 조선바나나 으름을

맛보게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단 한 개만 달린 으름.

한 개 달린 열매가 커가는 것을 지켜보며

수확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침내 9월 30일 노랗게 익은 열매가

살짝 벌어져 달콤한 향기가 스며 나왔다.

다음날인 주말을 맞아 집에 올 손자들에게 보여주고

으름을 따려고 사진으로만 담았었다.

다음날 손자들이 온다는 연락을 받고 나가보니

아뿔싸!

나쁜 손모가지가 지나갔는지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허무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 도둑도 필시 으름의 맛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나처럼 그 추억을 잊지 못해 훔쳐간 것이겠지만

내게는 나의 추억을 훔쳐간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으름에 대한 추억을 공유한 사람이니

용서해야지 어쩔 것인가!

내년에는 더 많은 열매가 달려

그 도둑에게도 흔쾌히 나누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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