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해질녁 인왕산에 올라

가루라 2011. 12. 6. 13:26

며칠째 찌뿌둥해진 몸이 불안해 인왕산에 올랐다.

늦은 오후 해는 서산 문턱에 서성인다.

홍지문쪽 능선자락을 잡고 오를 때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늦가을의 따사로운 날빛이

북한산자락 평창동과 구기동을 넓게 감싸고 있었다.

능선길에 두껍게 깔린 노란 솔잎

두꺼운 발다닥에도 느껴지는 매끄러운 느낌

가벼운 바람에 코끝을 스치는 솔향

가슴속까지 청량해질 때

산머리에 짙게 걸린 구름띠 사이로

찬란한 빛내림이 시작된다.

빛의 장막에 갇힌 인천방향

기름좋이에 그려진 빛바랜 담채화처럼 고답적이다. 

이내 북쪽으로부터 차가운 바람과 함께 밀려 내려온 검은 구름

허공중의 난장을 가로 지르는 기차바위 능선의 밧줄조차 추위에 떨고 있다.

두껍게 하늘을 덮는 먹구름으로 어두워진 인왕산과 안산 정상

날은 비록 어두워졌어도

올라가 만날 어떤 사람조차 없는데도

홀로 인왕산 정상에 오른다.

인적도 끊기고

휑한 겨울바람만 가득한 정상

먹구름 가득한 하늘만 허허로이 보다가

이내 밤바람에 등떠밀려

더듬더듬 산길을 내려온다.

산과 하늘이 그리는 사진이 있을 뿐인데

자연이 그려낸 풍경의 일부분을 담았을 뿐인데

산과 하늘과 이를 담은 사진 속에 내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굴튀김 이론"에 맞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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