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세상 사는 이야기

금성라디오와 아버지

가루라 2011. 11. 19. 09:21

69년 MBC TV방속국이 개국하면서 본격적인 TV방송 3사시대가 되기 전까지만해도

일부 가정의 재산목록 1호였었을 금성라디오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라디오는

1959년 금성사의 진공관모델 A-501모델이랍니다.

금성사가 지금 LG전자의 전신인건 다 아시죠.

 

아버님의 유품인 골드스타(금성) 7석 트랜지스터 라디오

모델 넘버나 제조연도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제가 초등학교 4,5학년이던

60년대 중반 무렵에 사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버님은 사랑채에 이 라디오를 모셔두고

안채의 큰방과 작은방에 스피커를 연결하여

라디오방송을 들려 주시곤 하셨습니다.

때론 마이크를 열고 안채 작은방에 계시는 어머님께

물 가져오라는 메세지를 보내기도 하시고 ㅋㅋ

 

아침 출근시간은 아차부인 재치부인

점심시간은 김삿갓 북한방랑기

그리고

초저녁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툇마루와 평상에 온식구가 모여 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방송 드라마를 듣곤했었네요.

섬마을선생님, 청실홍실, 바이칼호에 지다, 전설따라 삼천리 등등

 

식구도 많아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삼촌들

우리 형제자매 그리고

농삿일을 도와주시는 분까지 열너댓식구가

마당 가득히 앉아 라디오방송을 즐겼었습니다. 

 

방송의 음향효과가 어찌나 리얼하던지

귀신이 나오는 바람소리와 삐걱거리는 대문 열리는 소리가 자주 나오는

전설따라 삼천리 방송을 듣고 난 밤에는

오금이 저려서

사랑채 밖으로 문를 낸 화장실을 혼자 갈 수조차 없었네요.

꼭 삼촌이나 동생을 놉얻어서 갈 수밖에요.

(놉 : 품삯이나 품앗이를 통해서 얻은 일꾼을 지칭하는 남도사투리랍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바보상자라 일컫는 TV방송과 달리

귀로만 듣는 라디오방송은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하게 만드는 여운이 있어서

스스로 귀신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내기도 하고

섬마을 선생님을 사랑하는 순박한 섬처녀의 얼굴을 그려내기도 하고

가보지도 않은 엄동설한의 바이칼호의 풍경을 그려보기하고

각자가 자기 맘속으로 정황을 그려가면서 방송을 듣는

감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술단지였던 것 같아요.

 

고향집에 아버님의 유품으로 남은 골드스타 7석 트랜지스터 라디오

유난히 깔끔하셨던 그 분의 성품처럼

금방 산 물건같이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어서

영면에 드신지 3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곁에 계시는 것만 같아 맘이 아련해오네요. 

Oh-a oh, you were the first one,

Oh-a oh, you were the last one.

Pictures came and broke your heart.

Put the blame on VCR.

You are a radio star.

Video killed the radio star.

Video killed the radio star.

<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중에서>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62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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