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자연/世上山行

계룡산 산행기

가루라 2014. 12. 10. 16:37

전날 종일 내리던 비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새벽에 그칠 거라는 예보를 믿고 올랐던 계룡산

상신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할 때 금방 비라도 쏟아질 듯 어두운 날이었습니다.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었던 산이었지만 날씨가 안 도와주네요.

출발지점과는 다른 지점으로 하산하는 혼자서는 쉽게 감행할 수 없는 코스여서

더 더욱 아쉽네요.

이번 계룡산 탐방은 상신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여

부두골, 큰골, 큰골삼거리, 큰배재, 남매탑, 삼불봉, 자연성릉을 거쳐 관음봉까지 올랐다가

은선폭포, 동학사, 일주문, 홍살문, 동학사탐방지원센터로 돌아오는

총 8.7Km거리에 약 5시간 정도를 예상하는 코스입니다.

 

산행 내내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과 답답한 시야로 불편했지만

계룡산과 계룡산 주변에 얽힌 숨은 야사들을 들려주는 전문가의 동행으로

힘든지도 모르게 끝나버린 산행

아쉬운 마음에 훗날 좋은 날을 택해 꼭 다시 오리라 다짐해 봅니다.

 

<자연성릉에서 담은 천황봉 능선과 관음봉> 

계룡산은 전체적으로 음기가 강한 산인가 봅니다.

출발했던 상신리의 큰골도 그렇고 동학사계곡도 그렇고

바위가 쉽게 부스러지는 노년기 산이어서 인지

전체적으로 이끼가 많고 두껍게 자리잡고 있네요.

 

상신리탐방센터에서 큰골을 따라 만들어진 깊지 않은 계곡

작지만 아름다운 여울과 소 그리고 폭포에는

제각기 어울리는 이름이 붙여진 용산구곡(龍山九曲)이 있습니다.

우암 송시열이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떠 속리산 화양동계곡의 아름다움을 화양구곡으로 표현했듯이

취음 권중면이라는 사람이 큰골의 명소에 1932년 심용문, 은용담, 와룡강 등

용산구곡을 각자(刻字)해 놓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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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용담(隱龍潭) 

용산구곡 표지판 

큰골 

아침까지 내렸던 비로 산길은 촉촉히 젖었고

숲속의 모든 나무들은 차거운 바람에 오돌오돌 떠는 날입니다.

계곡을 뒤덮은 참나무 낙엽조차도 따뜻한 느낌을 주지 못 하네요

힘들지 않은 완만한 경사를 오르면 이내 큰골 삼거리와 큰배재를 지나 남매탑에 이르러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이른 점심을 먹습니다.

넓은 광장과 기다란 식탁이 준비되어 편안한 점심 장소이지만

골짜기를 타고 밀려오는 냉기에 쫓기듯 서둘러 점심을 끝내고 본격적인 오름을 타기 시작합니다.

<남매탑>

각각 5층, 7층으로 된 청량사지쌍탑으로도 불리는 남매탑(또는 오뉘탑)은

그럴듯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라 때 상원조사가 이 곳 토굴에서 수도하던 중

목에 가시가 걸려 신음하는 호랑이를 구해 주었더니 보은의 뜻으로 처자를 물어 왔답니다.

요즈음 국가시책에 부응하는 호랑이로 기려야 할 것 같네요.

혼인 첫날 밤에 물려 온 처자를 마을로 돌려 보냈지만

이미 혼사를 치른 터여서 달리 방안이 없었던 처자의 부모가 스님과 부부의 연을 맺기를 원했으나

수도자의 신분이라 의남매를 맺고 함께 수도정진 하던 중

한날 한시에 입적을 했다는군요.

이에 두사람의 사리를 수습하여 정진을 기리는 탑을 짓고 남매탑이라 불렀다네요.

불가의 탑신에는 늘 간절한 정진에 대한 이야기가 붙어 다닐만큼

수도의 길이 멀고 힘든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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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탑 

구(龜)형 주춧돌 

상원암 

남매탑에서 출발하여 약간 급한 경사를 오르면 바로 삼불봉(三佛峰)에 다다릅니다.

특이하게도 절벽을 이룬 울퉁불퉁한 구비가 삼존불이 양각으로 새겨진 것처럼 보인다하여 삼불봉입니다.

<자연성릉에서 본 삼불봉>

계룡산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과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의 산세라하여

계룡산(鷄龍山)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전체의 산세가 닭벼슬을 한 용의 형상으로 보인다네요.

삼국시대에는 백제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중국에까지 알려졌고

통일신라 때는 오악 중 서악으로

조선조에는 3악중 중악으로 여길만큼 비중있는 산이었습니다.

규모 있는 산인만큼 천황봉을 비롯한 28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와

7개의 계곡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산으로 생각됩니다.

<삼불봉에서 담은 천황봉 능선과 자연성릉의 암봉들>

 계룡산의 주봉인 천황봉(845m)과 쌀개봉(828m)에 이어 네번째로 높은 삼불봉(775m)에 서면

천황봉과 쌀개봉, 문필봉, 연천봉 등 주봉능선이 가로로 길게 늘어서 있고

아기자기한 암봉과 절벽으로 관음봉까지 이어지는 자연성릉이 세로로 이어집니다.

능선 오른쪽 멀리 산아래에는 평야지대에 둘러싸인 계룡저수지가 한눈에 들고

좌측 계곡 아래에는 동학사와 길게 이어지는 동학사 계곡이 한눈에 드는 조망 명소입니다.

특히나 겨울철 삼불봉에 핀 눈꽃, 설화는 계룡팔경 중 하나로 꼽히는 멋진 풍경이라는데

눈꽃 산행도 꿈꿔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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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봉 정상의 산객들 

삼불봉 정상에서 

삼불봉 원경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과 세찬 바람을 뒤로 하고 서둘러 자연성릉을 타기 시작합니다.

한쪽은 깎아지른 성채와 같은 절벽이고 중간 중간에 솟은 암봉은 망루처럼 보이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성곽의 능선 같다고 자연성릉(自然城陵)이라 부릅니다.

그 아기자기한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만큼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 더욱 더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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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성릉 암봉

자연성릉 암봉

자연성릉 능선

성채의 망루처럼 나선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을 만들어 놓은 자연성릉의 암봉

삼불봉에서 관음봉에 이르는 약 1.8km의 구간

이 곳 자연성릉에 눈꽃이 핀다면 정말 멋진 눈꽃산행이 될 것 같습니다. 

 아찔한 절벽 끝에는 안전을 위한 철책들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기기묘묘한 바위와 암봉이 관음봉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날이 좋으면 이 곳에서 가장 멋진 많은 사진들이 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음봉 방향 

관음봉 자락에서 담은 자연성릉

아쉬운 걸음은 관음봉을 오르는 급경사 계단앞에서 주저하게 만듭니다.

관음봉은 816m로 계룡산 28봉 중 세번째로 높은 곳입니다.

굽이를 만들만한 여유가 없이 거의 직선으로 뻗은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힘들게 오른만큼 관음봉 정상에 서면 오른 기쁨을 만끽할 준비가 없어도 좋을 멋진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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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봉오름 계단

자연성릉

자연성릉 줌인

자연성릉 전경

관음봉 정상 표지석 서쪽으로는

문필봉, 연천봉 그리고 그 사이에 등운암이 길게 늘어섭니다.

 관음봉 정상에는 제법 넓은 공간에 정자도 만들어져 있어서

급한 경사의 철계단을 숨가쁘게 오른 산객들이 숨도 돌리고

주변의 조망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남쪽으로는 입산금지구역인 쌀개봉과 천황봉이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지나왔던 삼불봉과 자연성릉 그리고 양 능선사이를 흐르는 동학사계곡이 한눈에 듭니다.

 관음봉에서 보이는 전경

쌀개봉과 천황봉 

이제는 하산해야 할 시간

등운암 앞을 거쳐 신원사로 내려가는 길도 있지만

우리는 예정대로 동학사계곡으로 하산합니다.

은선폭포까지의 하산길은 급경사의 만만치 않은 길이라 조심해야 할 곳입니다.

계룡산 대부분의 산길은 매끄러운 돌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더 조심스럽네요.

은선폭포까지 내려오는 동안 볼 수 있는 기암과 봉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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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봉 

 무명봉

합장바위 

자연성릉암벽 

자연성릉암벽 

지루한 내리막 끝에 잠시 숨을 고르고 갈 수 있는 멋진 장소가 은선폭포입니다.

갈수기에는 폭포가 사라지지만 우기에 쏟아지는 물줄기가 멋질 것 같습니다.

하얀 길다란 은선(銀線)이 아니라 신선들이 숨어 놀았다는 은선(隱仙)폭포는

폭 10m에 높이가 무려 46m에 이르러 낙차에 의해 만들어지는 운무는

계룡팔경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답니다.

계룡산을 다시 찾아야 할 이유를 또 찾는군요.

<은선폭포>

지금은 사라지고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디딜방아의 쌀개를 닮았다고

쌀개봉이라 불리우는 실체를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학사까지 2.5km로 길게 이어지는 계곡에는

오랜 풍상에 고목이 되어버린 거목과 작은 폭포들이 여기저기 눈길을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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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 

고목 

합수지점

합수되는 소(沼) 

악천후 속의 긴 여정은 동학사가 보이는 지점에서 끝이 납니다.

아쉬움에 산허리를 되돌아 보지만 그 간절함은 짙게 깔린 먹구름에 금방 묻혀버립니다.

신라 성덕왕 23년 서기 723년에 지어진 천년고찰인 동학사

동쪽 학바위에 학이 많이 왔었다 하여 동학사(東鶴寺)라 불렀다는 설과

고려 충절신하였던 포은 정몽주를 제향하였다 하여 동학사(東學祠)라 부른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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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 대웅전

동학사 범종루

동학사

실제로 동학사와 나란히 붙어있는 유림의 사당들

세조의 왕위찬탈에 항거하거나 반대해서 희생되었던 충의절사

단종, 사육신, 삼상, 종실의 대군들 그리고 생육신을 모시는 위패가 안치된 사당 숙모전(肅慕殿)

고려조의 충의절사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를 모신 삼은각(三隱閣)

신라 눌지왕 때 왜지에서 산화한 박제상의 충혼을 기린 동계사(東雞祠)가 있습니다.

삼은각 

삼은각, 동계사, 숙모전

바짝 마른 계절 늦가을임에도 동학사계곡은

푸른 이끼가 잔뜩 덮혀 있을 정도로 습도도 높은가 봅니다.

이끼들이 내려앉은 부도들

지관들이 이곳이 기가 드센 터로 꼽을 정도

설명할 필요없이 동학사계곡에는 많은 암자들이 입구까지 이어져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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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암 

길상암 

관음암 

문수암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일주문 밖에는 홍살문이 서있습니다.

계곡 안에 왕릉이나 태능이 있는 걸까요?

<계룡산 동학사 일주문>

<궁전, 관아, 능(陵), 묘(廟), 원(園) 앞에 세웠던 홍살문>

오랜만에 감행했던 원정산행

비록 날씨로 인해 만족할 수 있는 사진은 얻지 못했지만

사진으로 남기는 것보다도 더 깊은 심흔(心痕)을 남긴 계룡산이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다시 찾고 싶은 산 중 높은 순위에 올려 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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